번역의 문제. 첫 번째 문장의 한문은 다음과 같다. ‘무위명시(无爲名尸)’. 없을 무(无), 될 위(爲), 이름 명(名), 시체 시(尸). 조현숙은 직역하여 ‘이름의 시체가 되지 말라.’고 새겼다. 이렇게 번역하면 문학적 압축성을 띨 수는 있지만,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오강남은 ‘이름에 매이지 말고’라고 평이하게 해석했다. 의미전달이 쉬워졌다. ‘명예의 우상이 되지 말라’고 의역해 놓은 경우도 있다. ‘이름을 날리려 하지 말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래도 아쉽다. 나는 ‘이름 때문에 죽지 마십시오’라고 번역했다. 아쉽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다음 문장으로 넘어간다.
두 번째 문장. ‘무위모부(无爲謀府). 없을 무(无), 될 위(爲), 꾀, 음모, 모략할 모(謀), 곳집, 마을, 관청 부(府). 오강남과 조현숙은 '꾀의 창고가 되지 말고'라 새겼고, 모의나 모략의 관청이 되지 말라고 새길 수도 있다. 창고나 관청이나 비유적 표현이라 뜻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나는 '모략의 중심에 서지 마십시오'라고 새겼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뜻은 정확히 전달되었나? 잘 모르겠다.
이렇게 번역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읽는 고전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냥 번역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뜻을 전달하려니 문학성이 떨어지고, 문학성을 살리려니 뜻이 애매모호하다. 이 경계 어딘가에서 마음을 정할 수밖에 없다. 위의 번역은 다 그렇게 시간을 많이 들여 생각하고 생각해서 문장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전 번역가를 존경한다. 그들이 학문의 기초를 다져놓았기에 그 기초 위에 생각의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위의 문장들은 다 그렇게 압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여늬 문장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다듬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다. 더 쉽게 더 명료하게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한문을 모두 남겨 놓는다. 어려운 한자는 없으니 여러분도 번역해 보시길. “无爲名尸, 无爲謀府. 无爲事任, 无爲知主. 體盡无窮, 而遊无朕. 盡其所受乎天, 而无見得, 亦虛而已. 至人之用心若鏡, 不將不迎, 應而不藏, 故能勝物而不傷.”
2.
번역의 문제는 여러분에게 짐을 던져 놓았으니, 이제 편하게 내용을 살펴보아야겠다.
앞부분은 이름이나 명예나 재산이나 앎이나 채우려 하지 말고 비우라고 말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데, 이름조차 남기지 말고 흔적 없이 노닐라고 권장한다. 하늘에서 얻은 바를 다 쓰고, 이익을 바라지 말고 비우라고 말한다. 지식이나 소유로 자신을 증명하지 말고, 하늘이 바라는 존재로 풍성하게 나누라고 말한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에서 존재로' 이동하는 삶이 연상된다.
뒷부분은 그 유명한 '거울'의 비유다. 마음을 거울과 같이 쓰라는 것이다. '완전한 수용성과 반사성'이 거울 특징이다. 어떠한 것이 비추든 거절하지 않고, 비추는 사물 그대로를 되비치면서, 결코 자신의 상태는 바뀌지 않는 것이 거울이다. 거울은 선악의 판단을 하지 않고, 희노애락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유학이나 불교에서도 이 거울의 이미지는 유용하여, 자신의 마음을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고유한 상태로 유지하라는 말도 있고, 거을이 잘 비추기 위해 거울의 때를 깨끗하게 닦으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나는 마지막 문장에 꽂힌다. '승물이불상(勝物而不傷)'. 거울은 온갖 사물을 이기고[勝物], 상처받지 않는다[不傷]고 직역할 수 있으나, 나는 '비추기만 할 뿐 상처받지 않습니다'라고 새긴다.
대상과 만나 기쁨이나 슬픔의 감정이 생기고, 그로 인해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 상처받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그래도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온 우리에게는 사람 때문에, 돈 때문에, 세상 때문에 상처받지 말라는 장자의 위로가 작은 도움이 된다. 그 위로로 오늘 하루를 버티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는 오늘 하루량이면 족하다.
3.
관련지어 떠오르는 시 하나를 소개한다. 알프레드 디 수자가 썼다고 알려진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