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마음이 굶기 전에는 안회라는 제가 남아 있었는데, 마음이 굶으니 더 이상 안회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비움’입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그래, 그것이다, 내 이제 말해주마. 위나라 들어가 그 새장에서 노닐 때, 이름 따위에 흔들리지 말거라. 받아주면 소리내고[鳴], 들어주지 않으면 그쳐라. 나갈 문도 없고 구멍도 없다면,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부득이(不得已)하게 살아라. 그러면 괜찮을 것이다.
걷지 않는다면 자취가 안 남겠지만, 걸으면서 자취를 안 남기기는 어렵다. 사람의 일을 하기는 쉽지만, 하늘의 일을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날개가 있어 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겠지만, 날개 없이 난다는 말은 못 들어봤겠지. 앎이 있어 안다는 말은 들어봤겠지만, 앎이 없이 안다는 말은 못 들어봤을 것이다.
저 빈 곳을 보아라. 텅 비어 있지만 밝게 빛난다. 이런 곳에 머물면 좋다. 머물지 못하는 마음을 ‘앉아서 달린다[坐馳]’고 한다. 귀와 눈을 안으로 통하게 하고, 헛된 마음의 앎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신령한 존재들도 머물 수 있을 터이니 사람이야 어떻겠느냐? 이것이 만물의 변화이다. 우임금이나 순임금도 지키려 했고, 복희나 궤거도 평생 따르려 했다. 그만 못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 <인간세> 6
JinGoo라는 이름의 가짜 새이다. 조롱등(鳥籠燈)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 조명기구는 은은한 빛을 전달하고 블루투스와 연결하면 음악도 흐른다고 한다.
1.
우사는 갇혀 지내면서 왕처럼 사느니 힘들지만 자유로운 꿩처럼 살겠다고 말했는데, 지금 공자는 안회의 처지를 위나라에 갇혀 지내는 새처럼 여기고 있다. 내 일찍이 국가에서 보여준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갇혀 지내본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해, 검찰의 공안부서가 축소될 위기에 처하자, 과거의 사건을 들쑤셔서 공안사건을 만들어내기에 바빴다. 나도 그러한 사건 피해자(?) 중 1인이었던 셈.
1심에서 끝날 줄 알았던 재판은 2심으로 연결되어 나는 여럿이 지내는 혼거방에서 혼자 지내는 독방으로 이감되었다. 몸은 갇혀 있지만 마음은 앉은 채로 달음질쳤다. 그야말로 ‘좌치[坐馳]’의 상황. 왜 지금이지? 왜 나지? 민주화시대 아니던가? 오히려 감옥에 갇혀야 할 인간들은 공안사건을 조작해 내었던 검사들이 아니던가? 나 없이 가족은 잘 지내나? 아내는 고생하지 않을까? 돌도 안 지난 아이는 건강할까? 집안은 어떻게 굴러가고 있을까? 밖에서 고생하는 동지들에게 내가 참 짐이로구나 ……. 꼼짝없이 갇혀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마음만 어지러워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랜 수감 생활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간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갈 문도, 들어갈 구멍도 없는 상황이었다. 창살 밖에 비둘기처럼 날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날개가 없어 날지 못했다. 시간은 더디갔고, 고통은 더해갔다.
그때 나를 살린 것이 백석의 시와 불교의 초기경전 《수타니파타》였다. 아침마다 일어나 빈 공책에 시와 경전을 한 구절씩 쓰고 명상하기 시작했다. 혼란했던 정신이 가라앉고 어두웠던 마음이 가끔은 환해졌다. 어쩔 도리가 없는 부득이(不得已)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내에게 매일 편지를 쓰고, 편지를 보내온 사람들에게 답장을 썼다. 항소이유서조차 쓰지 못하는 수감자의 이야기를 듣고 조리에 맞게 항소이유서를 작성해 주었다. 원망이 가라앉고 마음의 초점을 하루하루에 맞췄다. 그렇게 세 계절이 지나고 나올 수 있었다.
2.
위 본문은 전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드디어 안회가 마음 굶음[心齋]의 경지, 비움[虛]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자 안회가 변했다. 이전에는 자신을 의식했는데, 이제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탈아(脫我)! 더 이상 안회는 없다. 그런 경지에 도달한 제자가 기특하기도 했는지 공자는 몇 가지 충고를 더해준다.
충고 1 : 너는 새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부득이할 때만 노래해라.
충고 2 : 실천하기는 어렵겠지만 흔적을 남기지 말아라.
충고 3 : 마음을 분주히 움직이지 말고, 자신을 텅 비워 신령한 존재[鬼神]들이 찾아와 머물게 하라.
자발적으로 위나라로 떠나는 안회에게 보내는 공자의 충고다. 위태로운 인간세상을 살아가는 처방이 담겨있다. 나는 여기에서 ‘부득이(不得已)’라는 말을 깊이 새긴다. 일상어의 뜻으로는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등 부정적 뉘앙스가 강하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아무것도 얻으려는 마음 없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부득이하게 임하자. 살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살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빈 마음으로 살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실천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