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노자 75 : 학생이 힘든 것은

교육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by 김경윤

학생이 힘든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치려했기 때문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힘들어집니다.

학생들을 다루기 힘든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힘들어집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포기하는 것은

교사들이 참교육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쉬 공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포기한 학생 이전에

참교육을 포기한 선생들이 있습니다.

왜 배웁니까?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앎은 삶의 무늬입니다. 삶이 있기에 앎이 시작되었습니다. 앎은 삶에 복무할 때만 앎이 됩니다.

대한민국 교육의 역사는 100년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교육열이 세계 어느나라보다 강했던 것은 교육의 결과가 삶으로 드러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논팔고 소팔아서 자식을 교육시켰고,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이제는 사회의 기득권층을 형성했습니다. 신분사회의 차별을 일소하고, 평등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좋은 방법은 교육을 통해서라고 모두들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어느샌가 흔들리지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좋다는 대학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취업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업에 취업해도 오래 버티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의 줄을 연달아 잡은 행운아들도 행운은 일시적일 뿐 언제든지 삶의 터전이 상실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좋은 줄을 잡지 못한 학생들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제는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공식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공과 신분상승의 계단은 곳곳에 지뢰가 설치되었고, 나사가 빠졌으며, 유리천정으로 층층이 막혀버렸습니다. 누가 지뢰를 설치하고, 나사를 빼고, 유리천정을 만들어놓은 것일까요? 앎이 삶에 복무하지 못하고, 앎이 삶을 배신했습니다.


사람은 사라지고 돈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꿈은 사라지고 로또와 일확천금의 백일몽(白日夢)이 정신을 어지럽힙니다. 존재의 평등이 보장되지 못한 곳에서 기회의 평등이란 헛된 구호일 뿐입니다. 지연(地緣)과 학연(學緣)을 능가하는 재물연(財物緣)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새로운 신분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앎이 삶을 배신하자 이제 아이들은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포기하고, 직업을 포기하고,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포기의 목록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 궁극은 꿈을 포기하는 것이고 삶을 포기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혹 이 아이들의 포기 이전에 선생의 포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선생이 참교육을 포기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요? 선생의 꿈이 학생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뀌면서, 아이들 또한 자신의 꿈을 포기한 것 아닐까요? 나는 그 점이 심히 두렵습니다. 앎이 삶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앎이 삶을 배신하고 있습니다. 그 앎/삶의 모델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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