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노자 79 : 깊은 상처

교육에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by 김경윤

깊은 마음의 상처는

쉬 아물지 않고 오래가는 법입니다.

가르침의 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스승은

학생의 입장에 서고

학생들을 다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스승의 길은

편애가 없습니다.

공정하고 공평하여

마음의 상처가 남지 않습니다.

학창 시절 수많은 선생을 만났지만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선생은 두 부류였습니다. 하나는 나의 가능성을 믿고 위로와 용기를 준 스승 같은 분들, 다른 하나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나를 함부로 대한 선생들. 누가 더 선명하게 기억나느냐고 묻는다면 후자라 말할 것입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치가 떨려서 지금도 화가 안 풀리는 선생 같지도 않았던 그 인간들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생긴 상처들은 대부분 선생의 화를 학생에게 전가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행했던 구타보다 더 잔인한 것은 언어폭력이었습니다. 구타의 상처는 금세 아물지만, 언어폭력으로 인한 모멸감과 수치심은 쉬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모멸감(侮蔑感)과 수치심(羞恥心)의 마지막 한자들이 모두 마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감정은 쉬 사라진다고 말하지만, 사실 감정이 가장 깊고 오래갑니다.

요즘 교육현장에서는 물리적 폭력은 거의 사라졌지만, 심리적 폭력은 쉬 사라지지 않습니다. 감정을 표시하지 않는 무관심(無關心)이나 무시(無視) 또한 심리적 폭력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폭력을 당한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존재론적으로 무화(無化)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있지만,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무시(無視)당하기 십상입니다. ‘나라의 기둥’이니, ‘미래의 꿈나무’니 ‘가족의 희망’이니 잔뜩 부풀린 언어들이 아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이상을 설정해놓고, 어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도리어 화를 냅니다. 설정 자체가 잘못입니다. 잘못된 설정을 기준으로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선생의 기대나 소망을 학생에게 투영하지 마십시오. 학생을 그냥 학생으로 보십시오. 문제 많고 탈 많고 부족한 존재라고 탓하지 마십시오. 모든 존재가 그러합니다. 문제 삼는 선생이 없다면 문제아는 없습니다. 학생은 문제아가 아니라, 배우며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학생(學生)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물론 선생들도 학생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생의 상처를 학생에게 상처로 되갚아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상처만 깊어질 뿐입니다. 악을 악으로 되갚지 마십시오. 악을 선으로 갚으십시오. 불가능한 실천이라고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까?


영화 <친구>의 한 장면. "니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대사로 유명하다. 물리적 폭력이든, 언어적 폭력이든 모두 존재를 상처 입게 한다. 그 상처는 꽤나 오래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로 쓰는 노자 78 : 물처럼 유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