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 궁금했다. 재능은 누군가를 훨씬 앞선 곳에서 혹은 훨씬 높은 곳에서 출발하게 만드는 듯했다. 재능이 있다면 더 열심히 쓸 참이었다. 만약 없다면 글쓰기 말고 다른 일을 열심히 해볼까 싶었다. 어떤 어른은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어른은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했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이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이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23~24쪽)
이슬아의 여섯 번째 에세이집 《부지런한 사랑》(2020, 문학동네)를 읽었다. 부제가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작가 이슬아가 글방을 차려서 글쓰기 지도를 하며 학생(?)들과 함께 쓰고,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슬아는 2014년 봄부터 시작하여 2020년이 된 지금까지 다양한 글방을 운영하며 글쓰기를 가르쳐 왔다. 심지어는 여수까지 내려가 가르치기도 했으니 그의 부지런에 혀를 내두른다. 책에는 이슬아와 함께 글쓰기를 공부하는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와 학생들의 글, 그리고 거기에 이슬아가 답글을 써준 것 까지 읽을 거리가 무진장이다. 학생들이 원고지에 써놓은 것을 그대로 붙여놓기도 해 현장감이 살아난다. (나 같은 노안이 읽기에는 좀 성가신 부분이 있다. 그래서 어떤 글은 패스!)
나 역시 우연찮게 책 한 권을 출간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학원에서 논술선생으로 10년 넘게 밥벌이를 했다. 이슬아의 글방과는 달리 나는 전문입사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쳤으니, 그 결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슬아는 아이들의 개성을 될 수 있으면 살리는 방향으로 글쓰기를 가르쳤다면, 나는 주로 대학교에서 원하는 답을 정확히 쓰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니 개성보다는 지식을, 독창성보다는 논리성을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반복되는 글쓰기 교육에 점차로 싫증을 느낄 때쯤 학원을 그만두었다. 대신 청소년도서관을 차려놓고 책읽기와 토론을 가르치고 성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하며 지냈다.
이런 생활을 10년 넘게 살다가 올해에 무슨 바람이 내게서 불었는지 어른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교육을 한다고 광고를 했다. 이른바 ‘1년에 책 한 권 쓰기 프로젝트’였다. 의도는 창대했으나 결과는 초라했다. 10명 정도의 학생들을 모았으나 나의 스파르타식 글쓰기를 따라하기에는 글쓰기 근육이 채 단련되어 있지 않았다. 훈련도 채 시키지 않고 경기를 내보낸 꼴처럼 되었다. 속도를 줄이고 재미를 붙이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나마 생존자가 남아있을 때 그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 욕심을 줄었다.
이제는 욕심을 내려놓고 학생들이 써온 글을 정성스럽게 나누는 일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나마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으니 다행이다. 내년도에는 올해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글을 쓰는 것과 남에게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자신이 작가가 되는 것과 남을 작가로 만드는 것 또한 분명 다른 일일 것이다. 그러니 서두를 일이 아니다. 각자 속에 숨어있는 작가를 발견할 때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하루하루 글을 써야 한다. 내 속도를 따라하라 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할 즈음에 이슬아의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배운다. 재능이 아니라 호기심과 애정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이슬아를 보면서, 아주 어린 학생들의 글에서 자극을 받고 자신을 점검하는 그의 겸손한 태도를 보면서, 내 갈 길이 멀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 더 없이 도움이 되는 책을 읽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이슬아는.
<추신>
이슬아의 글을 읽다가 그와 많은 것이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 한 가지를 발견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어졌다. 재능보다는 꾸준함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점! 적어도 나는 작가의 미래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오늘도 다시 쓰는 작가가 진정한 작가다. 이슬아의 글을 하나 더 인용한다.
요즘엔 원고 마감을 하러 모니터 앞에 앉은 뒤에 한마디를 읊조린다. “땡스, 갓.” 나는 종교가 없고 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이 세계의 어딘가를 향해 감사 인사를 올린다.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의 대한 절망은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25~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