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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Nov 24. 2020

2020 독서노트 99 : 팬데믹 시대의 책 읽기

장성익,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본다》(이상북스, 2020)

흥미로운 것은, 현대 과학기술의 이런 ‘생태적 실패’는 과학기술이 본래 목적했던 바를 훌륭하게 성취한 결과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환경 재앙이 된 것은 플라스틱 개발의 본래 목적대로 분해되지 않는 물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 과학기술의 근본 문제는 자신의 목적 그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셈이다. 목적의 성취, 곧 ‘성공’이 실패로 귀결된다. 거대한 역설이자 모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환원주의와 반대되는 ‘전일주의’(holism)의 관점이 요구된다.(45쪽, 베리 카머니_<원은 닫혀야 한다>)    

   

명심할 것은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가난해지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불행해지고 무력해진다는 사실이다. 일리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으는 갖가지 물건이나 기구는 결코 내면의 힘을 키워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그런 편의를 더 많이 가지고 누릴수록 거기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고, 삶은 그만큼 더 큰 제약을 받는다. 사람은 살아갈 힘을 잃을수록 재화에 의존한다. 이렇게 되면 몸과 마음의 생활방식이 동시에 초라해진다. (145쪽, 이반 일리치_<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올해 2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구 전체를 거의 멈춰놓았으니 코로나 사태와 같은 일은 아마도 역사상 최초의 현상일 것이다. 9개월 가까이 코로나를 겪으며 인류의 지헤는 깊어지고 반성은 치열해졌을까? 아마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로나 사태 이후는 이전의 역사와는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인류전체의 곤란함이 가중되어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지, 인류 전체가 지헤를 모아 아름다운 방향으로 선회할지 미지수다. 물론 우리는 후자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바라기만 하면 되는가? 하는 사람 따로 누리는 사람 따로 있지 않다면, 분명 우리의 삶에도 많은 희생과 양보, 변화와 개혁이 수반되어야 하리라. 문제는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자신의 나침반을 설정하느냐 하는 점이다. 코로나 이후 수많은 책이 그와 관련되어 출간되었지만, 나는 장성익의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본다》(이상북스, 2020)을 펼쳐 든다. 부제로 ‘펜데믹 시대의 책읽기’라 써놓은 것처럼, 이 책은 환경과 생태를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는 30권의 대표적인 책을 소개하고 있다. 


제목만 열거해보자면, 《가이아》, 《녹색세계사》, 《원은 닫혀야 한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인류세》, 《체르노빌의 목소리》, 《장기 비상시대》, 《작은 것이 아름답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성장의 한계》, 《에콜로지카》,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오래된 미래》,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 《한살림선언》, 《침묵의 봄》, 《동물해방》, 《숲에서 우주를 보다》, 《모래 군의 열두 달》, 《소리와 몸짓》,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월든》, 《시계 밖의 시간》, 《잡식동물의 딜레마》, 《우리들의 하느님》, 《삶은 기적이다》, 《에코페미니즘》,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들의 반란》, 《또 하나의 일본》, 《나무를 심은 사람》, 《땅의 혜택》, 《슬픈 미나마타》, 《야성의 부름》, 《에코토피아》, 《지구 끝의 사람들》, 《연애소설 읽는 노인》 등이다.

거기에 각 책을 소개할 때마다 부수적으로 2,3권의 책을 더 언급하고 있으니 전체로 치면 100여권의 책이 소개되고 있다. 정말 이 책들이 생태주의를 대표하는 책이냐고 물으면 할말은 없지만, 대개가 필독서에 해당한다는 점에는 논란의 여지가 적을만한 책이다. 자, 여기서 자신이 읽었거나, 내용을 알고 있거나, 귀에 익은 책이 몇 권이나 될까? 만약에 생태지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분명 이 책은 자신의 생태지성도를 측정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만약에 한 권도 읽지 않았다면? 괜찮다. 지금부터 읽으면 되니까. 이 책은 생태학과 관련하여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가이드북처럼 여기면 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덩달아 대여섯 권의 책을 구입하였다. 아직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았으니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생태지성을 드높여보자. 하늘을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도 있고, 추워서 밖에 나가지 못하고 따뜻하게 집안에서 보내야할 시간이 많은 겨울도 있다. 독서의 시간은 충분하고, 읽을 책은 넘쳐난다. 이 얼마나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인가?      


<추신> 

나는 책을 읽다가 찜해놓은 웬델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와 《지식의 역습》을 중고로 싸게 구입하였다. 품절되어 서점에서 못 산 점은 아쉽지만, 그나마 중고서적으로 구입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책 한 권 가격도 못 되는 돈으로 두 권을 구입했으니, 수지 맞았다고 말해야겠다. 이렇게 좋은 책을 엄청 싼 가격에 내놓은 독자에게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당신의 복이 나에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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