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독서노트 100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오강남, 성소은, 《나를 찾는 십우도 여행》(판미동, 2020)

by 김경윤

"혼란 속에서 성찰을 시작하고[尋牛], 얼핏 나의 본성을 보고[見跡], 명상을 통해 나의 참모습을 알아차리고[見牛], 의식을 이해하고[得牛], 뇌와 마음의 작용을 길들이고[牧牛], 심리를 가지런히 합니다[騎牛歸家]. 이 모든 단계는 삶에 집중하는 서양철학[忘牛存人]과 텅 빈 물질세계를 증명하는 현대과학[人牛俱妄],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동양사상[反本還源]으로 견고해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入鄽垂手]을 살게 합니다.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탁월한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남입니다. 십우도의 여정은 내가 나를 낳는 여행입니다.“(21~22쪽)


아내의 명을 받들어 구입한 책이 오강남, 성소은이 공저한 《나를 찾는 십우도 여행》(판미동, 2020)이다. 저자 오강남은 《장자》, 《도덕경》, 《예수는 없다》, 《또 다른 예수》 등 다양한 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믿을만한 비교종교학자이며, 표층종교가 아니라 심층종교를 탐구하는 신학자이다. 그런데 성소은이 좀 생경하다. 지은이 소개를 뒤져봤더니 이력이 특이하다. 학문적으로는 일본에서 법학과 국제관계를 전공하고, 종교적으로는 순복음교회, 성공회를 걸쳐 3년간의 선불교 출가수행을 거친 후 환속하여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를 운영하면서 성공회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나온다. 진리를 찾아 참 많은 곳을 지나쳐 왔구나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사람이 요즘 말로 ‘찐’이다. 만족하지 못하면 거침없이 다른 곳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종교인임을 알 수 있다.


아내에게 줄 책이니 묵혀둘 수 없는 처지라, 구입하자마자 밤을 패어가며 읽었다. 책의 구성이 재밌다. 선불교 전통으로 내려오는 ‘십우도(十牛圖)’의 12세기 곽암 선사의 송을 우리말로 해석하고, 스즈키의 영역을 첨부하여 핵심적으로 정리한 것은 오강남이 담당했고, 각 단계별로 이해를 높이는 책들을 첨부하여 연관지어 심화시킨 것은 성소은의 몫이다. 오강남의 압축적인 핵심정리도 읽는 맛이 있지만, 오히려 뒤이어 관련된 주제의 다양한 책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흥미를 높이는 성소은의 작업에 더욱 눈이 갔다. 책을 설명하고 연결하는 필력이 보통 내공이 아니었다. 그냥 설명하는 정도가 아니라 책의 정수를 빨아먹은 자의 긴장감 넘치면서도 문학성과 종교성이 뛰어난 ‘글빨’에 매번 감탄하게 된다. (성소은의 책 중 《경전 7첩 반상》을 급히 검색하여 주문해 두었다.)

놀라운 점은 종교 경전을 해석하는 서브텍스트의 선정이 종교의 영역을 넘어 과학, 심리학,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종교를 해체하고 탈종교화된 세속주의적 관점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영혼을 밝히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일상적인 삶을 통해 실천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편협한 종교적 테두리를 이미 훌쩍 벗어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세속주의적 영성을 경험하게 한다. 한편 동서양을 넘나들며 소개하는 책들은 그 자체로 다시 읽을거리로 과제를 주고 있다. 그중 몇몇 책은 이미 읽었으나 대다수의 많은 책들은 읽지 못한 책이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괴로운 이중적 감정에 빠져든다.)

십우도는 자신을 잃고 삶이 곤란에 빠졌을 때, 자신을 찾아 떠났다가 자신을 찾아 돌아온 후, 자신 마저 잃고 커다란 깨달음의 경지에서 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10개의 단계를 소를 찾아 떠나고 찾아돌아오는 10장의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처음 찾은 소가 검었는데, 잡아 돌아오는 과정에서 흰소를 변하는 모습이 상징적이다. 과학이 발전하고 우리가 점점 기계에 의존할수록 자아가 축소되고 상실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다시금 십우도를 통해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21세기야말로 진정한 자기발견, 자기탐색의 시기라는 것이다. 성소은의 말마따나 ”십우도의 여정은 내가 나를 낳는 여행“이다.


이 책은 종교인뿐만 아니라 종교인이 아닐지라도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싶은 독자에게 활용도가 매우 높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종교인이면서도 교회나 절에는 의도적으로 나가지 않는 ‘가나안 종교인’에게 권하고 싶다. 구원은 바로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좋은 책을 보면 좋은 책을 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 책은 아마도 향후 나의 책쓰기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추신>

어쩌다보니 올해에 쓴 독서노트가 100회가 되었다. 읽은 책을 다 노트로 쓰지는 않았으니 한 해에 100권 이상을 너끈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코로나가 준 축복(?)이 아닐까 싶다. 우연찮게 100번째 글에서 다룬 책이 쏙 마음에 드는 책이라 기분도 좋다.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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