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묻고 내가 답하는 인문학Q&A
오늘은 아침마다 버스역까지 맏아들을 데려다 주면서 자주하는 대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른바 ‘그럴 수 있어’ 대화법입니다.
아들의 출근 시간이 늦어져서 바삐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깜빡이도 켜지 않고 내 앞으로 들어오는 자동차가 있었습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젠장,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성질을 부리려 하는데, 갑자기 아들이 말합니다. “그럴 수 있어요.” 옆좌석에 있는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니, 아들은 빙긋이 웃으며, “아버지도 급한 마음에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로 남의 차 앞에 끼어든 적이 있지요? 저분 역시 너무나 급한 나머지 깜빡이 켜는 것도 잊은 채 우리 차 앞으로 끼어든 걸 수 있잖아요. 그럴 수 있잖아요.”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욱하던 마음이 수그러들고 차분해집니다. 그럴 수 있지요. 화날 만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주어진 것이고, 그 주어진 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온전히 내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이해심을 발휘하여 웃어 넘길 수도 있고, 성질머리를 죽이지 않고 욱할 수도 있지요. 이번에는 아들 덕분에 나의 마음의 흔들림을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니 마음이 넓어지고 편안해집니다. 화가 나는 상황은 주어진 것이지만 화를 내는 것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화를 낼 수도 안 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이 ‘그럴 수 있어’ 대화법은 정말로 다양하게 써먹을 수 있습니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제멋대로 마음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며칠이 지나, 이번에도 같은 도로를 달리는데, 출근시간에 인도 포장공사를 하고 있어 포크레인이 한 차선을 막아서서 병목현상이 생겼습니다. 당연히 출근길이 막혔지요. 나는 또 “아니 출근시간에 이렇게 공사를 하면 도로사정이 안 좋아지는 걸 알면서 왜 하고 있는거야.”하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또 말합니다. “그럴 수 있지요. 저분들은 혹시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한 시도 쉬지 않고 일 한 것 아닐까요? 오늘이 작업마감일이라 아직까지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저분들은 얼마나 짜증나고 힘들겠어요.”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럴 수 있지’라고 수긍이 갑니다. 내 마음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보거나, 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면 세상을 달리 볼 수 있게 됩니다. 속 좁은 마음이 다시 넓어집니다.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다시 옹졸한 나를 바로 잡습니다. 이렇게 매번 아들의 출근길을 도와주는 내 운전시간이 나의 수련시간이 됩니다.
이렇게 출근 시간 ‘그럴 수 있지’ 수행을 계속하자 이제는 일상적으로도 ‘그럴 수 있지’ 마음에 자주 생겨납니다. 화가 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곧장 화를 내지 않고 속으로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며 사태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해가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해도 일단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희안하게 이해가 안 되는 문제도 이해의 지평이 열리고, 화가 나는 상황에도 화를 내지 않고 너그럽게 사태를 바라볼 수 있어요. 이제는 아들이 나의 스승입니다. 나중에 아들에게 “너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라고 물었더니, 아들은 빙긋이 웃으며 “우리 직장의 유행어예요.”라고 말하네요. 흐흐. 뭔들 어떻습니까? 마음을 다스리는데 이만한 게 없습니다.
‘그럴 수 있어’는 영어로 ‘It happens.’라고 표현합니다. 과거형으로는 ‘It happened.’라고 쓰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네’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