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모든 동물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 서로의 의사소통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식물학자들은 식물조차도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위험한 동물들이 접근할 때, 같은 종의 식물에게 신호를 줌으로써 경계한다고 말한다. 언어는 경험을 정보화한 것이다. 생물은 어떠한 형태든 경험을 정보화하여 유전한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다른 종의 언어와 다르게 형성되었다. 경험을 정보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상상하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른바 ‘허구의 생성’이다. 상상은 경험에 기초하지만 경험을 넘어선다. 현실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현실세계 너머까지 꿈꾼다. ‘신(神)’이라든지, ‘종교(宗敎)’라든지, ‘국가(國家)’라든지 현실에서는 없는 것들을 인간은 언어로 창조한다. ‘허구의 세계’가 현실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한다.
또한 인간의 언어는 구체적이고 차이가 나는 대상을 일반화하고 추상화하여 개념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한다. 개념(槪念)이란 ‘차이점을 제거하고 공통점만으로 형성된 생각의 틀’이다. 예를 들어 장미, 민들레, 개나리의 차이점을 제거하고 그들의 공통점을 취하여 ‘꽃’이라는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현실 속의 존재일 뿐 아니라 언어 속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실재(實在)와 허구(虛構) 속에 동시에 거주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언어의 창조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구상의 최종포식자의 위치에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언어의 창조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대규모의 인류공동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인간이 형성할 수 있는 사회의 크기는 언어를 공유하고 실천하는 집단의 크기이다. 이질적인 언어집단끼리는 협력이 어렵다. 동질의 언어를 구사하는 집단 사이에서 협력이 쉬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친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친해지기가 어렵다.
한편 언어는 대상을 지칭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가치와 신념을 포함하고 있다. 주의할 것은 인간의 언어가 허구(虛構)이듯이, 가치와 신념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즉 실체(實體)가 없다. 예를 들어 ‘민족주의’는 실체가 아니다. 민족주의뿐만이 아니다. ‘~주의’가 붙어있는 말은 대개 ‘주의(主義)’ 앞에 붙어있는 말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민족주의를 소중하게 여기고 이러한 것을 실천하는 한 이 말은 현실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즉 힘(力, power)을 갖게 된다. 허구가 실체가 없다고 해서,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허구도 그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있는 한. 현실에서 강력한 힘으로 작동될 수도 있다. 가짜언론이 판치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그것을 믿고 실천함으로써 거기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권력이 생산하는 언어(지식)는 권력을 정당화하고 권력을 유지 강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한 지식은 정당하지 않은 것을 정당화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자연화한다.
철학이 ‘언어’에 관심을 쏟는 것은 이러한 언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힘 때문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게 힘( scientia potentia est)”이라고 표현하였고, 독일의 철학자 마르크스는 “모든 시대의 지배 정신은 지배자의 정신”이라고 갈파했다. 푸코는 이를 “권력이 지식이다.”라고 정리했다.
권력이 생산하는 언어(지식)는 권력을 정당화하고 권력을 유지 강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한 지식은 정당하지 않은 것을 정당화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자연화한다. 심지어 과학의 형식을 빌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독일 나치즘은 사회진화론에 기초한 우생학적 지식으로 민족 간의 차별을 정당화하면서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따라서 우리가 언어(지식)를 사용할 때, 그 언어가 무엇을 정당화하고, 무엇을 차별하려는 살펴야한다. ‘가부장’이라는 언어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정당화하고, 여성을 차별하려는 권력의 의도를 잘 드러내는 언어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속에 담겨 있는 지배자의 정신이 담겨 있음을 기억하자.
우리는 언어를 벗어날 살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역사, 사회적 맥락과 가치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갓 지배자의 꼭뚜각시로 전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