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37 : 세상의 어지러움

쓴맛 6 - 지혜의 그림자

by 김경윤

아주 옛날에는 새끼에 매듭을 만들어 기호로 사용했으며, 먹는 음식을 달게 여겼고, 입는 옷을 아름답게 여겼고, 풍속을 따라 즐겼고, 거처를 편안히 여기며 지냈습니다.

이웃나라를 서로 바라보았고, 닭과 개의 소리가 이웃 나라에까지 들렸지만.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시대야말로 지극히 잘 다스려지던 때라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백성들이 목을 빼고 발돋움하여 기다리다가 어디에 현명한 사람이 있다는 말만 들리면 양식을 싸 짊어지고 그에게 달려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안으로는 그의 어버이를 버리고, 밖으로는 그의 임금을 섬기는 일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들의 발자취는 제후들의 국경에 줄을 잇게 되고, 그들의 수레바퀴 자국은 천리 밖에까지 연결이 됩니다. 이것은 바로 임금이 지혜를 좋아하는 데서 생긴 잘못입니다.

임금이 정말로 지혜만 좋아하고 도를 알지 못하면 천하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지혜가 생겨 활, 쇠뇌, 그물, 주살, 덫, 올가미 등을 발명하자, 새들은 곧바로 하늘 위를 어지럽게 날게 되었습니다. 낚시, 미끼, 그물, 투망, 전대, 통발 등을 발명하자 곧바로 고기들은 물속을 어지러이 헤엄치게 되었지요. 덫, 함정, 그물 등을 발명하자 곧바로 짐승들은 진창을 어지러이 뛰어다니게 되었습니다. 지혜로 인해 거짓, 속임수, 원한, 궤변, 논쟁, 의견 차이 등이 많아지자 곧바로 세상의 습속은 달콤한 말에 속아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온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진 죄는 지혜를 좋아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은 추구할 줄은 알면서도,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은 추구할 줄을 모릅니다. 모두 자기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은 비난할 줄 알면서도, 이미 자기가 좋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는 반성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크게 어지러워졌습니다.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음을 어기고, 산과 내의 정화를 녹여버리고, 가운데로는 사철을 변화를 무너뜨렸습니다. 숨쉬며 움직이는 벌레나 날아다니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들의 본성을 잃게 되었습니다.

지혜를 좋아하는 것이 이토록 세상을 어지럽히게 된 것입니다. 하와 은과 주나라의 3대 이후로는 언제나 이와 같았습니다. 농사짓는 백성들은 버리고 교활하고 간사한 자들을 좋아하며, 고요한 무위는 버리고, 남을 속이는 마음을 즐겨하는데, 어찌 천하가 어지럽지 않겠습니까.

<거협> 6


지혜란 무엇인가? 지식의 정수이다. 데이터를 정리하여 정보를 얻고, 정보를 체계화하여 지식을 형성한다면, 지식을 압축하여 지혜가 형성된다. 인류문명사는 바로 이러한 지혜를 탐구하는 역사라 할 수 있다.

모든 성인(聖人)과 현인(賢人)들이 다 이 지혜를 탐구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지혜를 제도화하여 문명을 건설했다. 문명의 이기(利器)와 제도(制度)는 이 지혜의 산물이다. 그런데 장자는 이러한 지혜에 딴지를 건다. 다스리는 자들이 “지혜만 좋아하고 도를 알지 못해 천하는 큰 혼란에 빠졌다”고 일침을 놓는다.

이데아의 세계는 잡다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세상은 온통 울퉁불퉁하건만 동그란 원이 아니면 원 취급하지 않는다. 네모도 아니고 동그란 것도 아닌 것은 회색 취급을 당한다. 개념(槪念)이란 말은 넘치는 것을 자르고 모자란 것들을 무시하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와 같다. 긴 놈은 잘리고 짧은 놈은 늘려야 한다. 무엇이 되었든 죽음을 면치 못한다. 한 번 정해진 개념과 제도는 사람의 삶을 유혹하면서 위협한다. 개념을 모르면 무지한 자가 되고, 제도를 벗어나면 범법자가 된다. 자연스런 삶은 사라지고 측정된 삶, 만들어진 태도가 삶을 지배한다.

지혜는 마치 사냥도구와 같다. 정교하고 정밀할수록 뭍생명에게는 위협적이다.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죽이는 도구다. 더위는 에어컨으로 없애고, 추위는 히터로 없애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문명의 혜택이다.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를 넘어, 이제는 기후재난의 시대가 되었다. 잘 살자고 만들어놓은 제도와 이기가 모두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어버렸다. 자신에게 좋은 것을 벗어난 것을 비난하고 혐오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좋다 하고 좋은 것을 반성할 줄을 모른다. 그러는 사이에 자연은 파괴되고 인성은 사라진다. 사람 하나 살자고 만물을 죽이는 것이 곧 지혜이고 문명의 실체다.


장자는 지혜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 문명의 악마성을 통찰한다. 장자의 눈은 인간의 눈을 넘어 새와 물고기와 벌레의 눈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음을 어기고, 산과 내의 정화를 녹여버리고, 가운데로는 사철을 변화를 무너뜨렸습니다. 숨쉬며 움직이는 벌레나 날아다니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들의 본성을 잃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디 우주와 자연만이겠는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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