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뜰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던 목수가 망치와 끌을 놓고 올라와서 환공에게 물었습니다.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에는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환공이 말했습니다. “성인의 말씀이시다.”
“성인은 살아 계신 분입니까?”
“이미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로군요.”
환공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에 대해 수레바퀴나 만드는 놈이 어찌 평가하느냐? 올바른 근거가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죽여버리겠다.”
목수는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로서 그 일도 관찰한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히 깎으면 헐렁해져 견고하게 되지 않고, 꼼꼼히 깎으면 빠듯해져 서로 들어맞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않고 꼼꼼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의 감각과 마음의 호응으로서 결정되는 것이지 입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법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저는 그것을 저의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가 없고, 저의 아들은 그것을 저에게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과 그의 전할 수 없는 정신은 함께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것입니다.”
<천도 13>
일찍이 프란츠 카프카는 《변신》이라는 작품에서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의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박웅현은 “책은 도끼다”라는 말로 압축하면서 자신의 책 제목으로 삼았다.
이처럼 책은 우리의 무지를 타파하고, 지식을 전수하며, 삶을 살아갈 지혜를 주는 최고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임금이 읽고 있는 책 앞에서 수레바퀴나 만드는 공인(工人)이 “책은 찌꺼기다”라고 실로 무례한 언설을 피력한다. 목숨이 아홉 개나 되는 구미호도 아니면서, 이렇게 죽을 각오를 하고 말하는 노인의 심보는 뭔가?
드라마로 치면 갈등이 최고도로 오르는 장면이다. 자, 노인의 변명 한 마디가 목숨에 값해야 한다.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수레바퀴를 깎는 게 보기는 쉬워도 워낙 정교한 일이라 손의 감각을 최고도로 높이고 마음이 호응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라,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이 힘든 일을 자식에게 맡기지도 못하고 나이 칠십이 되도록 스스로 깎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경지가 있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가면서 몸으로 체득할 수밖에 없는 삶이 있다. 그 마음 말로는 전달할 수 없어 말 없이 꽃 한 송이를 들었던 부처처럼. 인생의 정수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일 수밖에 없다. 말하면 말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울에 먼지가 앉듯 더욱 뿌옇게 되는 사태가 있다. 먼지가 뒤덮인 거울은, 말로 닦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닦아야 한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경지는 삶으로 살아야만 증명되는 것일 수도 있다.
말(글)은 어쩌면 연필심을 드러내기 위해 둘레를 조심스럽게 깎는 행위일지 모른다. 그렇게 깎여나간 나무 찌꺼기가 모여 책이 된 것은 아닐까?
<추신>
어쨌든 노인의 이 담담한 말로 노인은 목숨을 건졌을까? 아니면 제 환공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까? 더 나아가 노인 또한 말(글)의 무용성을 말로 설명한 것이니, 말은 유용한 것이 아닐까? 책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말이 담겨 있는 책(장자)을 쓴 장자는 누구인가? 남에게 던진 말은 자기지시성이 있어 마치 부메랑처럼 자신에게도 던져진다. 참으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구나. 백척간두(百尺竿頭)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