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40 : 그대는 편안한가?

쓴맛 9 - 적당할 때 멈추라

by 김경윤

말을 잘 모는 동야직이 장공을 만났습니다. 말이 나가고 물러남이 먹줄에 들어맞을 듯이 곧았고, 좌우로 도는 것은 그림쇠로 그린 듯 동그랬습니다. 장공은 아무도 이렇게 말을 몰 수 없다고 칭찬하며 그림쇠처럼 백 번을 돌고 오라고 명령했지요. 안합이 지나가다 이 장면을 우연히 보고 장공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동야직의 말이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장공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후에 과연 말이 쓰러져 돌아왔습니다.

장공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찌 말이 쓰러질 것을 알았소?”

안합이 대답했습니다.

“말이 기력을 다했는데도 계속 돌게 만들었으니 쓰러질 것이라 말했을 뿐입니다.”

<달생> 11


공수가 손으로 그리면 그림쇠나 굽은 자를 사용한 듯 정확했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물건과 하나되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손과 정신이 하나가 되니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지요. 신발이 편하면 발을 잊게 되고, 허리띠가 편하면 허리를 잊게 됩니다. 마음이 편하면 시비를 잊게 되지요.일이 순조롭게 잘 되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외부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시작이 편하고 내내 편하면 나중에는 편하다는 생각조차 잊게 됩니다.

<달생> 12


자, 상반된 에피소드가 연속해서 등장한다. 말을 잘 몬다는 동야직은 말을 죽었고, 신발이나 허리띠를 만드는 공수는 물건을 너무 잘 만들어 신발을 신으면 발이 불편하지 않고, 허리띠를 매면 허리가 불편하지 않았다. 차이는 무엇인가?

장자는 알맞음[適]이라 말한다. 안팎으로 지나치지 않는 것이 알맞음이다. 동야직은 말을 틀에 맞게 움직이게 하려다 말의 알맞음을 놓쳤다. 말은 본성상 완전히 동그랗게 돌거나 규격에 맞춰 움직일 수 없다. 그렇게 움직이게 만들려면 억지와 강제가 있어야 한다. 억지와 강제는 생명을 쉬 지치게 만들고 지나치면 죽게 만든다. 적당할[適] 때 멈춰야 했다. 억지와 강제에도 한도가 있다. 동야직의 말부림과 말의 움직임이 충돌하는 경우이다. 말은 혹사당해 죽었다.

한편 공수는 발이 편하게 신발을 만들고, 허리가 편하게 허리띠를 만든다. 편안한 신발은 신지 않은 듯하고, 편안한 허리띠는 차지 않은 듯 하다. 발이 신발을 잊고, 허리가 허리띠를 잊는 경지이다. 신발을 꾸미느라 발을 혹사시키지 않고, 허리띠를 꾸미느라 허리를 혹사시키지 않는다. 가장 알맞음(편안함)은 알맞다(편안하다)는 생각조차 잊게 되는 경지이다.


E. F.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에서 ‘적정기술(중간기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대규모, 대용량, 최대생산, 최대소비 대신 ‘불교경제학’에 따른 정적한 규모, 생산, 소비를 이야기한다. 기술 역시 삶의 규모에 맞는 ‘적정기술’이 필요하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다. 대량생산과 소비는 대량쓰레기를 낳을 뿐이다. 규모에 맞지 않는 살림살이는 빚을 늘리고 삶을 파괴한다. 최고가 되려고 하고, 최대가 되려고 하면 삶을 잃을 수 있다. 쉬어야 하는 말을 혹사시키는 동야직처럼, 우리는 무한경쟁 속에서 질주하며 우리를 죽이고 있지는 않는지. 적당할 때 멈추어야 한다. 넘치면 불편하고, 불편하면 오래 살지 못한다. ‘알맞음’을 잃은 삶은 그래서 위태롭다. 정신줄을 놓게 만들고 삶을 쓰러지게 한다. 그만 하면 됐다. 지금은 멈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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