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 맛 9 - 물 밖의 물고기
죽고 사는 것은 운명입니다. 밤과 낮이 일정한 것은 하늘의 일입니다.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는 것, 모두가 만물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하늘을 어버이처럼 여기면서 자신보다 더 사랑합니다. 하늘보다 높은 운명이야 어찌해야겠습니까? 사람들은 임금은 자기보다 낫다고 여기면서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하물며 임금보다 나은 운명이야 어찌해야겠습니까?
샘이 말라 땅 위에 드러난 물고기들은 서로에게 물기를 뿜어주고 서로를 물거품으로 적셔줍니다. 하지만 강이나 호수 속에서 서로를 잊고 사는 것만 못합니다. 사람들은 요임금을 칭송하고 걸임금을 비난하지만, 차라리 두 임금을 모두 잊고 운명의 길을 가는 것이 낫습니다.
대지는 우리에게 형체를 부여하고 삶을 주어 우리를 수고롭게 합니다.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합니다. 내 삶이 좋다면, 내 죽음도 좋은 것입니다.
<대종사> 5
호수 바깥으로 튀어나온 물고기에게 물을 뿌려주는 것은 물고기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니 선한 일이겠다. 그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는다면 물고기에게는 악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물고기는 선함을 원할까, 악함을 원할까? 선도 악도 아닌 본래의 물속으로 들어가길 원하지 않을까?
자연스런 삶에서는 선도 악도 소용없다. 선이나 악이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알려주는 것은 선한 일이다. 그러나 길을 잃지 않았다면 선한 일은 소용없다. 길을 잃었을 때 잘못된 길을 알려주면 악한 일이다. 그러나 길을 잃지 않았다면 그 악 또한 소용없다.
이 땅에 살면서 선과 악을 구분하고 선업을 권장하고 악업을 금지하는 것은 이 땅의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마치 갑자기 샘물이 말라버려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하지만 물속에 있는 물고기라면 서로를 잊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것이다. 선업도 악업도 소용없다.
인간으로 태어난 성장하고, 수고롭게 지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불행한 사태로 여기지만, 모든 존재가 삶과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연스러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우리는 늙음과 죽음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장자는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한다“며 긍정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삶은 우주만물의 공통법칙이다. 그것을 운명이라 한다. 낮밤이 바뀌듯, 사시사철이 변하듯, 태어나 성장하고 늙고 죽는 것은 운명이다. 사는 것이 좋다면 죽는 것도 좋은 것이라고 장자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는 것도 죽은 것도 이리 팍팍할까? 자연의 길에서 많이 벗어났기 때문이다. 선악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선은 부족하고, 악이 넘쳐난다. 아수라의 길이다. 선인도 필요 없고 악인도 필요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복지도 필요 없고 착취도 필요 없는 자치와 자유의 세상이 자연스런 세상일 것이다. 장자는 그러한 상태를 ’서로잊음[兩忘, 相忘]‘이라 표현했다. 우리는 언제쯤 선악을 넘어 서로를 잊고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