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50 : 길들여진다는 것
감칠 맛 8 - 명마의 비애
말은 발굽으로 서리와 눈을 밟고, 털로는 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습니다. 말은 마음껏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발을 높이 들고 내달립니다. 이것이 말의 본성입니다. 비록 높은 누대와 궁궐이 있다 해도 말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을 잘 다룬다는 백락이, 낙인을 찍고, 털을 깎고, 발굽을 다듬고, 굴레를 씌우고, 고삐와 띠를 맨 다음 마구간에 줄줄이 매어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열에 두세 마리는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말을 길들인다며 굶주리게 하고, 목마르게 하고, 높이 뛰게도 하고, 갑자기 달리게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여러 장식들로 말들을 꾸몄습니다. 입은 거추장스러운 재갈을 물리고, 머리장식을 올렸으며, 가슴받이를 달게 하였으며 거부할 때는 채찍질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남은 말의 절반이 죽었습니다.
옹기장이는 찰흙을 잘 다룬다면서 둥근 것은 그림쇠에 맞추고, 모난 것은 곱자에다 맞추어 빚습니다. 목수는 나무를 잘 다룬다면서 굽은 것은 곡자에다 맞추고 곧은 것은 먹줄에 맞춰 잘랐습니다. 하지만 찰흙과 나무의 성질이 어찌 그림쇠나 곱자와 곡자와 먹줄에 들어맞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백락은 말을 잘 다스리고, 옹기장이와 목수는 찰흙과 나무를 잘 다룬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잘못 다루는 것입니다.
<마제> 1
이른바 명마(名馬) 한 마리가 만들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말들이 죽어야 하는가? 1등급 학생을 만들기 위해 나머지 8등급은 루저가 되어야 하는가? 명마를 만든다는 백락과 우등생을 만든다는 교사는 얼마나 다른가?
말들은 길들여지기 위해 태어났는가? 아이들은 우등생이 되기 위해 태어났는가? 보기좋게 꾸며지고 빨리 달리는 것이 진정 말이 원하는 것이었을까? 학교에서 학원으로, 다시 학교로 진자운동을 하며 젊음을 불태우는 삶을 진정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었을까?
길들여진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본성에 반하는 일, 본성을 잃는 일이지도 모른다. 교복을 입히고, 딱딱한 의자에 장시간 앉히고, 보기도 싫은 시험을 보게 하고, 성적으로 평가하고, 자존감을 잃게 하고, 발랄함을 없애는 것,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커서 무엇이 될까. 입시에 울고 웃는 삶을 살게 하는 게 어른이 되는 문명이라면 참으로 우리는 후진 문명에 살고 있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몸매와 세련되게 만들어진 매너와 풍부한 학식과 교양은 정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일까? 나에게 자문해본다. 인문학이라는 것 역시 반성의 대상이다. 사람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하고, 이 또한 공들여 쌓아올려 자신을 장식하게 만드는 구조물이라면 허물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자꾸 자괴감이 든다.
최소한의 인위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는 삶은 어떠한 삶일까? 생명을 착취하지 않고 삶을 보살피는 배움은 어떻게 가능할까? 과학은 이제 미세한 세포와 광활한 우주의 비밀마저 캐고 있는데, 우리는 인생의 비의(秘意)를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자꾸 질문이 많아지는 날이다. 글쓰기 힘든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