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맛 1 - 송나라 모자장수
송나라사람이 예식 때 쓰는 모자를 팔러 월나라에 갔습니다. 그러나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살아 모자가 필요 없었습니다. 요임금이 세상을 잘 다스려 나라가 평화롭게되자 막고야산에 사는 네 분의 스승을 뵈러 갔습니다. 그곳은 분 강가 양지에 있었는데 그윽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요임금이 그곳에 있는 동안 자기에게 나라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소요유> 9
코미디언 김병만이 나오는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구촌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오지를 찾아다니며 생존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에는 유명한 연예인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운동선수, 가수, 배우, 코미디언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잘 생기고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똑똑하고 돈도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정글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별무소용이었다. 컴퓨터나 핸드폰은 전기가 없어 소용없었고, 돈이나 크레디트 카드는 가게가 없어서 쓸 수 없었다. 그곳에서 생존하는 조건이 일체의 문명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으니, 텐트나 버너, 라이터도 가져갈 수 없었다. 그들이 문명인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옷뿐이었다.
한국에서라면 그들 사이에 끼어서 빛도 못보았을 김병만은 놀라운 생존력과 생존기술로 그들을 리드했다. 문명사회에서 쓸모 넘쳤던 사람들은 별 쓸모가 없었고, 문명사회에서 별로 대접받지 못했던 김병만은 추장으로 등극하며 그들의 실질적 리더역할을 했다. 쓸모 있는 문명기기와 재주는 쓸모 없어지고, 문명사회에서는 별로 쓸모 없었던 기술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역할의 역전이 벌어지는 경우이다.
나는 때로 석유가 없어진다면, 전기가 없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기도 한다. 그동안 내가 몰았던 차는 거추장스러운 고물취급을 받을 것이고, 전기를 이용하며 살았던 우리의 삶은 참으로 무력해질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한 종으로 전세계가 무력해지는 사태를 우리는 1년 넘게 경험하고 있다. 상황과 변수 하나만 바뀌어도 쓸모있음은 쓸모없음으로 변하고 만다. 우리가 쌓아온 기계문명은 과연 안전할까?
역사를 보면 높은 가치를 지녔던 것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상투는 사극에서나 유용할 뿐이다. 사모관대(紗帽冠帶)도 이제는 일상적 쓸모가 사라져 관광용품으로 사용될 뿐이다. 신분제도도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 수천 년을 혈통적 임금제도로 살았지만 지금은 선거로 나라의 대표를 뽑고 있다.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해보면 우리가 지금 애지중지하던 것도 시간이 흐르거나 공간이 달라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 그 많던 아파트들은 어떻게 될까? 학교는? 학원은? 입시제도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가족은 어떻게 될까? 결혼은? 아이들은?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이 지속되리라 생각하지만, 마치 바닷가 모래에다 써놓은 글씨처럼 파도가 밀려오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사라지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아득하고 막막하다. 마치 모자를 팔러 월나라로 갔던 송나라사람처럼, 막고야산에 찾아간 요임금처럼 넋을 놓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