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54 : 학의 다리 길다고 자르지 말라

짠맛 2 - 본래의 모습을 잃지 말자

by 김경윤

진정 올바른 것은 타고난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에 붙은 군살을 군더더기라 여기지 않고, 손가락이 더 있어도 덧붙였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길다고 남았다 하지 않고 짧아도 모자라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이면 괴로울 것이고, 학의 다리가 기다고 자르면 슬퍼할 것입니다. 길게 타고난 것을 자를 것도 없고, 짧게 타고났다고 늘릴 필요 없습니다. 아무 걱정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인(仁)이니 의(義)니 하는 것 사람의 본래 모습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진 사람[仁人]이 어찌 저리 걱정이 많겠습니까? 붙어 있는 발가락을 찢으려 하면 울 것입니다. 육손이의 손가락을 잘라주려 하면 소리치며 울 것입니다. 변무(騈拇)의 발가락은 모자라고 육손이의 손가락은 남는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은 걱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걱정할 바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질다는 사람들은 멀쩡한 눈으로 이 세상을 걱정하고, 어질지 않은 사람은 본래의 모습을 버리고 부귀를 탐합니다. 이게 걱정할 바입니다. 인의(仁義)는 사람의 타고난 모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인의는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다. 어진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 걱정을 지니고 있는가? 또한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어 있는 사람은 그 것을 갈라주면 아파 울 것이다. 손가락이 하나 더 달린 육손이의 덧달린 손가락을 잘라주면 또한 아파 울 것이다.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숫자상 남음이 있고, 한 쪽은 부족함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걱정은 한가지이다. 지금 세상의 어진 사람들은 눈을 멀쩡히 뜨고서 세상의 환란을 걱정한다. 어질지 않은 사람들은 타고난 본성의 진실한 모습을 버리고 부귀를 탐내고 있다. 그러니 인의는 사람의 타고난 모습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 은, 주 삼대 이후로 세상이 왜 이리 시끄러운가요.

<변무> 2


변무(騈拇)는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이 붙어 네 발가락이 된 것을 말하고, 육손이는 손가락 하나가 떠 나와 여섯 손가락이 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니 걱정할 바가 아니다. 다섯 개의 발가락과 손가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모습을 이상하다 생각하여 갈라주고 잘라주고 싶어하지만 억지로 그렇게 하면 고통만을 낳을 뿐이다. (요즘은 성형수술이 발달해서 덜 할 것이다.) 그대로 둔다고 해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그런데 이와 달리 인(仁)이나 의(義)는 사회가 형성되면서 새로 생긴 윤리적 덕목이다. 맹자는 이를 인간의 본래적 기질로 보았지만, 장자는 권력자들이 통치를 하기 위해 덧붙인 인위적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본성에 덧붙여진 것이다. 그러니 장자가 보기에는 진실한 것이 아니었다.

맹자는 이 덕목을 극대화하여 통치원리로 삼으려 했고, 장자는 이 덕목의 최소화하는 생활윤리를 말하고자 했다. 장자가 보기에는 사랑[仁]을 강조하는 사람은 반대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의[義]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부정의한 짓을 해왔다. 비근한 예로 우리의 현대사 속에 전두환 군사정권이 외쳤던 것이 ’정의사회 구현‘이었지만, 그들이 구현한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와 인원의 탄압이었다. 윤리적 덕목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권치고 제대로 된 정권은 없었다. 그것은 자연스런 삶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장자는 말한다. 오리 다리 짧다고 늘리지 않고, 학의 다리 길다고 자르지 말라. 발가락이 모자란다고 놀리지 말고, 손가락이 남는다고 손가락질 하지 말라. 본래 그렇게 태어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나 정의를 외치면서 민중을 억압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야말로 본래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런 민중의 삶에 억지로 붙여놓은 군더더기 가치일 뿐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것은 변무와 육손이가 아니라 바로 사랑과 정의를 외치는 자이다. 육신의 군더더기를 탓하지 말고, 정신의 군더더기를 제거하라. 그 입을 다물라.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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