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56 : 도둑질 5계명

짠맛 4 - 성인을 없애라

by 김경윤

도척의 부하가 도척에게 물었습니다. “도둑질에도 도(道)가 있습니까?”

도척이 대답했습니다. “어디엔들 도가 없겠느냐? 집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맞히는 게 훌륭함[聖]이요,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감함[勇]이요, 나중에 나오는 게 의리[義]요, 훔쳐도 되는지 안 되는지 아는 게 지혜[知]요, 훔친 물건을 고루 나누는 게 사랑[仁]이다. 이 다섯 가지 도를 갖추지 않고 큰도둑이 된 자는 아무도 없다.”

착한 사람도 이러한 ‘성인의 도(聖人之道)’를 얻지 못하면 바르게 설 수 없고, 큰도둑인 도척도 이 도를 알지 못하면 도둑질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보면 착한 사람은 적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많습니다. 그렇다면 성인이 세상에 배푼 이득은 적고 폐해는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입술이 없어져 이가 시리고, (…) 성인이 생기자 큰도둑이 나타났다”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을 없애면 도둑도 내버려둬도 세상이 스스로 다스려질 것입니다. 냇물이 마르면 골짜기가 텅 비고, 언덕이 무너지면 깊은 못이 매워지듯이, 성인이 죽으면 큰 도둑은 없어지고, 세상은 평화롭고 아무 일 없게 될 것입니다.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도둑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성인이 계속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큰도둑인 도척을 더욱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거협> 3


‘성인의 도’가 생기자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제멋대로 이 도를 끌어다 쓴다. 심지어 중국에서 제일 포악하기로 유명한 도척조차도 자신의 도둑질을 ‘성인의 도’로 합리화한다. 이렇다면, 성인의 도는 도둑질의 도로 될 수 있고, 도박의 도도 될 수 있으며, 비리와 폭력의 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귀에 걸면 귀고리요, 목에 걸면 목걸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 모두 ‘성인의 도’를 말하지만, 정작 세상이 점차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어지러워진다.

처음의 도둑놈은 숨어서 도둑질을 했는데, 이제 도둑놈은 버젓이 도둑질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성인의 도’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성인의 길과 도둑의 길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당당하고 뻔뻔한 도둑놈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에게 이론을 대준 성인을 없애는 것이다. 성인이 없다면 도둑질을 당당하게 못할 터이니, 도둑질도 쇄락할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과격하게 성인이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날강도 같은 도척보다 그에게 근사한 이론을 제공한 성인이 더 밉다. 이렇게 쓰고보니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이른바 ‘국민교육헌장’ 사건. 유신독재자 박정희는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박종홍 등 우리나라 최고의 철학자들에게 자신의 통치이념을 미화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쓰게 했다. 그리고 모든 교과서의 맨 앞에 국기에 대한 맹세와 더불어 ‘국민교육헌장’을 수록하였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어른들은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그 어마무시하고 어려운 글을. 온갖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엮은 이 글을 외우지 못하면 집에도 못가고 심지어 매까지 맞았다. 지금 생각해도 치기 떨린다. (이 헌장은 1994년 사실상 폐기된다.)

예나 지금이나 ‘성인의 도’는 착한 사람이 써먹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들이, 독재자들이, 사기꾼들이 써먹기 좋은 도구였나보다. ‘성인의 도’가 넘치는 곳에 썩은 냄새가 진동했나보다.


<추가 지식>

도척(盜跖)은 춘추시대 노나라의 현인 유하혜(柳下惠)의 동생으로 중국 역시상 가장 잔인한 도둑으로 유명하다. 성격이 회오리같이 사납고, 말도 잘하고, 욕도 잘했다. 따르는 부하만 해도 9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장자》 잡편에서는 아예 <도척>편을 별도로 다루고 있는데, 도척과 공자의 살떨리는 설전을 목격할 수 있다. 공자가 도척을 설득하려 갔다가, 오히려 도척에게 큰 봉변을 당한다. 도척은 공자더러 “도둑이라며 너만한 도둑이 다시 없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너를 도구(盜丘)라고 부르지 않고 나만 도척(盜跖)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조롱하는 대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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