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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맛 57 : 부러움의 연쇄고리

짠맛 5 - 약한 것을 이기지 못하고 강한 것을 이기다

by 김경윤

발이 하나밖에 없는 기(夔)는 지네를 부러워하고, 지네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은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눈(目)을 부러워하고, 눈은 마음을 부러워합니다.

기가 지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발도 힘들어 간신히 다니는데, 당신은 수많은 발로 잘도 다니시네요.”

지네가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재채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시죠? 사람이 재채기를 할 때, 근 방울은 구슬 같고, 작은 방울은 안개 같은 게 섞여 뿜어나오지요. 그 방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지요. 저 역시 재채기를 하듯 많은 발을 자연스럽게 움직일 뿐입니다. 잘 하는 지는 모르겠네요.”

이번에는 지네가 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많은 발로 움직이지만, 선생님은 발도 없이 움직이시네요.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뱀이 대답했습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찌 바꾸겠습니까? 어찌 발을 쓰겠습니까?”

이번에는 뱀이 바람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저의 척추와 갈비뼈를 의지하여 움직이는데, 선생께서는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휙 하고 북해에서 일어나 획 하고 남해로 가십니다.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바람이 대답했습니다.

“그렇네요. 획 하고 북해에서 일어나 휙 하고 남해로 불어가네요. 하지만 손가락으로도 나를 가르고, 발길질로도 나를 움직이게 합니다. 한편 큰 나무도 꺾어버리고 큰 집을 날리기도 하지요. 작은 것은 이기지 못하고, 큰 것에는 이깁니다. 크게 이길 수 있는 건 오직 성인(聖人)만이 할 수 있습니다.”

<추수> 9


전통적으로 동양인들은 음양(陰陽)으로 세상의 기운을 살피고, 오행(五行)으로 만물의 변화를 본다. 이 음양의 기운을 잘 살핀 것이 노자요, 오행의 변화를 잘 살핀 것이 장자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는 각기 다른 기운을 발휘하지만, 서로 살리고[生], 서로를 보완하면서[克] 변화한다. 어떤 기운이 더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떤 기운이 더 강하거나 약한 것이 아니다. 만물은 이러한 기운의 배합과 변화를 통해 살아간다.

모든 존재는 각기 존엄한 자신의 모습을 갖는다. 그럼에도 살면서 자신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한다.. 발이 하나 밖에 없는 기는 발 많은 지네를 부러워하고, 많은 발로 움직이는 지네는 발 없이 움직이는 뱀을 부러워하고, 몸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뱀은 몸도 없는 데 움직이는 바람을 부러워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바람은 움직이지도 않는데 모든 것을 살피는 눈을 부러워하고, 보아야 하는 눈은 보지도 않고도 아는 마음을 부러워한다. 자신에게는 없는 능력을 갖고 있는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인간이나 자연이나 마찬가진 듯하다. 그런데 정작 부러움의 대상은 자신이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 저질로 그렇게 된 것이니까.

본문의 대화는 바람의 대답으로 끝난다. 이야기가 완료되려면 바람 다음에는 눈이, 눈 다음에는 마음이 와야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 바람에서 서둘러 마감한다. 마감도 어색하고 억지스럽다. 미완의 글인 셈이다. (아쉽다. 누락된 것일까?) 상상력을 발휘하여 장난삼아 마저 완성해볼까?


이번에는 바람이 눈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데, 선생께서는 움직이지 않고도 세상을 보십니다.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눈이 대답했습니다. “그대는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나 역시 마음이 가는 데로 움직입니다. 움직여야 볼 수 있고,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마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눈은 마음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떠야 볼 수 있고, 감으면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듯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

마음이 대답했습니다. “그대는 내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대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 그대는 기를 보고, 지네를 보고, 뱀을 보고, 바람을 봅니다. 나는 그대가 본 세상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대는 나의 창문입니다. 하지만 그대가 보지 않아도 나는 세상을 보기도 합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거나 감아도 세상을 보게 하는 나는 뭘까요?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저장창고일까요? 저절로 만들어진 걸까요? 누군가 만든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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