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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Feb 26. 2021

2021 독서노트 4 : 레비나스와 대담

빌립 네모와 레비나스,  《윤리와 무한》(도서출판100, 2020)

실제로 책임이란, 마치 윤리적 관계 이전에 이미 그 자체로 존재한 것인 양하는 주체성의 단순한 속성이 아닙니다. 주체성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애당초 타자를 위한 것입니다. 그 책(『존재와 다르게, 또는 존재사건 저편』)에서 타인의 근접성은, 타인이 나와 공간적으로 가깝다거나 부모처럼 가깝다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그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한 – 내가 그에게 책임이 있는 한 – 그가 나에게 본질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109~110쪽)   

  

레비나스는 1906년 리쿠아니아의 카우나스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러시아에서 중등교육과정을 받고 독일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후설과 하이데거와 교류를 했다. 이후로 프랑스인으로 귀화하여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쟁포로로 잡혀 종전과 함께 풀려났다. 그러나 그의 집안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대전 당시 학살당했다. 이 전쟁 경험은 훗날 레비나스가 타자의 윤리학을 정립할 때 깊은 영향을 마친다. 그는 후설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의 현상학을 프랑스에 전하는 데 기여했다.

후설이 현상학적 인식론을, 하이데거가 현상학적 존재론을 정립했다면 레비나스는 현상학적 윤리학을 정조한 사람이다. 그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주체이론을 정립할 때, 타자이론을 정립한 사람이다. 그에 저술은 대부분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지만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

나는 강영안의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을 통해 레비나스 사상의 대강을 그렸고, 우치다 타츠루의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을 통해 레비나스 철학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 그후 레비나스가 쓴 《시간과 타자》와 《타인의 얼굴》등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던 차, 작년 말에 철학자 필립 네모와 레비나스의 대담집은 《윤리와 무한》이 나왔다는 소식을 ‘4월의책’ 안희곤 대표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안희곤 대표와 도서평론가 이권우와 나는 고양시 주엽동에 위치한 한양문고의 세입자들이기도 한데, 책을 좋아하는 3인이 <한양문고 세입자들>이라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올해부터 월 1회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6시 30분부터 진행하고 있다. 각자 한 권씩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 분들에게 전달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덕분에 교양있는 3권의 책을 소개하는 재미가 있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2월에 나는 《지구별 생태사상가》를, 안희곤 대표는 《윤리와 무한》을, 이권우 평론가는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소개하기로 하였기에 대담의 참여자로써 다른 분들이 추천한 책을 읽었다.

레비나스와 필립 네모의 대담은 프랑스 공영방송에서 연속으로 진행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레비나스의 철학적 흐름과 그의 철학이 주목하고 있는 것을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공영방송에서 진행한 것이라 다른 저서들의 비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여전히 어렵다. 만약에 이 방송을 우리나라에 틀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심스럽다. 프랑스인들이 사용하는 일상언어의 수준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야할까? 모르겠다.)

어쨌든 이 대담집은 열 개의 주제로 진행된다. 1. 성서와 철학, 2. 하이데거, 3. ‘그저 있음’, 4. 존재의 고독, 5. 사랑과 자식성, 6. 비밀과 자유, 7. 얼굴, 8. 타인에 대한 책임, 9. 증언의 영광, 10. 철학의 엄격함과 종교의 위안 등인데 내가 흥미있게 읽은 부분은 7번 이후부터이다.

인간의 윤리학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아마도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경지 정도일지 싶은데, 레비나스의 윤리학은 그러한 유대인적 상상력을 철학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절대적으로 접근불가능하고 이해불가능한 타자의 고통어린 얼굴을 보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그 고통에 응답하는 윤리적 인간은 예수를 많이 닮아 있다. 그러한 책임감이 우리가 무한한 신에게 다가가는 통로가 될 것인가? 비록 얇은 책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뒤에 해설은 앞으로 읽어야할 책들에 대한 자상한 소개를 담고 있어 처음으로 레비나스를 접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듯 싶다.     


<추가>

재작년에 레비나스 철학을 강의한 ppt 자료를 추가한다. 레비나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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