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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독서노트 5 : 동성애자의 자기분석

디디에 에리봉, 《랭스로 되돌아가다》(문학과지성사, 2021)

by 김경윤

그러니 서로 뒤얽힌 두 여정이 있는 셈이다. 자기 자신을 재발명하는 상호의존적인 두 가지 궤적. 하나는 성적 질서와 마주한 궤적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질서와 마주한 궤적이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기로 했을 때 분석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성적 억압과 관련된 첫번째 궤적이었지, 사회적 지배와 관련된 두번째 궤적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러한 실존적 배반은 바로 이론적 글쓰기의 몸짓에 의해 한층 심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글 속에 주체의 사적인 차원을 연루시키는 글쓰기의 한 가지 유형[내 섹슈얼리티의 분석]을 채택한 셈인데, 이는 또 다른 유형[내 계급적 출신 배경의 분석]을 거의 배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선택은 현재의 시간 속에서 나를 정의하고 주체화하는 방식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내 과거, 즉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 내가 과연 누구였는지를 선택하는 방식을 구성했다. 노동자의 아들이 아닌 게이 어린이, 게이 청소년으로서 말이다. (30~31쪽)


디디에 에리봉은 우리에게 단독적 저술자로 알려지지 않고, 푸코 평전, 레비-스트로스와의 대담집 등 다른 사상사들을 우리에게 깊이있게 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나는 디디에 에리봉이 푸코 평전의 저술자임과 동시에 말년의 푸코의 연인으로 살았음을 알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게이였다.

푸코가 게이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푸코의 저술을 관통하는 개념이 ‘정상성’인 것도 말년의 저술이 ‘주체성 형성과 자기배려’인 것도 푸코의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푸코는 평생토록 보수적인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지성인이었다. 어디 푸코만이겠는가? 푸코의 연인이었던 디디에 에리봉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책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동성애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자 계급 가족을 떠났던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사해나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이다.

전체 5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책은 회고록이기에 어렵지 않게 읽힌다.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프롤레타리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게 되던 어린 시절에 집안과 학교, 동네 사람들에게 받았던 고통의 나날들을 멀리하고 간신히 지역적으로도 신분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지식인의 모습, 동성애자들이 조금은 자유로운 도시로 진입하여 결코 자신의 출신 고장과 신분으로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나날들. 그럼에도 사상적으로 좌파에 가담하여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듯이 살았던 이율배반적인 모습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고뇌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학문적 여정들이 다양한 사상가들과의 삶과 날줄씨줄로 얽히며 서술되고 있다.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을 마치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에서 규명하려는 심리학적 태도들 비판하고, 동성애자를 끊임없이 소외시키면서 정상성 바깥에 자리를 재정하는 억압적, 사회적 기재 등을 분석하고, 사회적 지배의 양상들을 정치하게 서술하고 있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이다. 주체형성은 심리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며, 가족주의 극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철저히 사회화, 정치화, 역사와 지리, 즉 사회계급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는 다른 철학자들, 예를 들면 부르디외, 바르트, 푸코, 사르트르 등이 제출한 지식을 이용하여, 계급적 수치심과 성적 수치심이 사회적 지배 체계를 유지하는데 끊임없이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폭로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사회적 분석서이면서 지배사회의 통치기술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로 읽을 수 있다.

왜 프롤레타리아의 자식은 프롤레타리아를 저주할까? 왜 동성애자들은 끊임없이 수치스러워할까? 이러한 자기부정의 역사가 바로 사회지배의 공고히 하는 통치술의 역사임을, 하지만 그러한 역사를 당연한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됨을, 그러한 배치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을 찾아 저항해야함을 이 책은 자기성찰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뒤에 부촉으로 실려있는 옮긴이의 해제를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소수자의 글쓰기와 자기발명의 윤리>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는 이 해체는 책에 넓게 포진되어 있는 언술들을 집약적으로, 체계적으로 다시 설명하고 있어 디디에 에리봉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 중에 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친다.


“지배의 사회학과 그것이 설파하는 결정론은 저항의 의지를 무력화하는 것이 아닐까? 에리봉은 오히려 정치적 행동의 전망과 가능성, 그리고 그 난점과 한계를 규정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사회세계에 대한 실재론적 지식을 정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민중과 지식인의 ‘지적 평등‘을 논하는 자크 랑시에르의 관점이라든지, 노동 계급 문화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리처드 호가트나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영국 문화연구자들의 경향을 ‘지적 포퓰리즘‘으로 평가절하한다. 우리가 계급 불평등으로 인한 무지와 빈곤의 냉혹한 현신을 직시할 줄 알아야 실질적인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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