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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Feb 22. 2021

2021 독서노트 3 : 만물은 인간의 척도다

황대권 외 18인, 《지구별 생태사상가》(작은것이아름답다, 2020) 

이제 인류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그 하나는 기술대(Technozoic era)고, 다른 하나는 ‘생태대’다. 현재 기술대로 이끄는 힘이 너무 강력하지만, 지구 공동체가 생존 가능한 조건을 만들려면 생태대로 이동해야 한다. 생태대는 인간이 지구와 상호 증진하는 양식으로 지구에서 존재하는 시대를 말한다. 생태대 실현은 인간의 결정과 헌신에 달려 있다. 이는 우리 시대에 주어진 ‘위대한 과업’이라고 선언한다. 이 과업을 “공유된 이야기와 꿈을 체험함으로써, 시간적 전개라는 맥락 안에서, 생명 체계들의 공동체 안에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종(種)의 수준에서, 인간을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복잡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구에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태대 실현을 위한 인간 의식의 근본 변화와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인간 사회의 기본 체제인 정치와 경제, 교육과 종교가 그 뿌리에서부터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94쪽)   

  


두 방향의 독서를 떠올릴 수 있다. 원심형 독서과 구심형 독서. 원심형 독서는 앎의 영역을 확장하는 독서이고, 구심형 독서는 앎의 깊이를 추구하는 독서다. 박학다식이 원심형 독서의 슬로건이라면, 일점돌파가 구심형 독서의 슬로건이다. 독서가라면 이 두 방향의 독서에 균형을 잘 맟줘야 한다.

내 경우로 말하면 새해 초에는 원심형 독서로 앎의 영역을 넓힌 후, 그 중에서 내가 모자란 부분을 집중적으로 채우는 구심형 독서를 병행하는 편이다. 굳이 영역을 정해놓고 독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매년 최대 관심사를 정해놓고 그 분야를 많이 읽는 편이다. 2019년에는 페미니즘 분야를 많이 읽었고, 코로나가 터진 2020년에는 펜데믹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다. 2021년에 내 관심사는 빅히스토리와 생태주의다.


인문학을 다루다보면 불가분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에 경도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 시기를 통과하면서 나는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5천 년도 채 안 되는 문자문명의 한계를 넘어서 우주의 탄생과 지구의 탄생, 생명의 탄생과 인류의 탄생의 흐름을 개괄적으로나마 살피는 빅히스토리에 관심을 갖고 독서를 하고 있다. 이 영역을 들어서면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인류학, 역사학 분야 뿐만 아니라 뇌과학과 인지심리학 등 다양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평생 문과로 살다가 이과적인 학문을 접하면서 흥미진진하다. 인문학에서 만물학으로 넘어가는 비전이 형성된다. 에드워드 윌슨의 말마따나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 “만물이 인간 이해의 척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간 인문학은 얼마나 협소한 영역에서 놀았던가 반성하게 된다.


빅히스토리를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태주의 사상으로 연결된다. 이번에 읽은 책은 28명의 생태주의자들이 28명의 생태사상가를 소개하는 《지구별 생태사상가》(작은것이아름답다, 2020)이다. 오래된 사람들이 아니고 지난 100여 년 동안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활동했던 다양한 나라의 사상가, 활동가의 책과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에른스트 슈마허, 루이스 멈포드, 이반 일리치, 머레이 북친, 배리 카머너, 레이첼 카슨, 토마스 베리, 에드워드 윌슨, 존 뮤어, 알도 레오폴드, 스코트 니어링, 게리 스나이더, 린 마굴리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니콜라이 바빌로프, 웬델 베리, 후쿠호카 마사노부, 량수밍, 피에르 라비, 장일순, 반다나 시바, 캐롤린 머천트, 사티쉬 쿠마르, 아리야라트네, 비노바 바베, 메튜 폭스, 존안나 메이시, 라르네 네스 등이 생태사상가의 목록이다.  

반 정도는 아주 익숙하고, 남은 반의 반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고, 4분의 1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특히 아시아권 생태사상가들은 낯설다. 중국의 량수밍, 인도의 사티쉬 쿠마르, 스리랑카의 아리야라트네, 불교생태학자 조안나 메이시 등은 이번에 책을 읽으며 처음 접했다. 서구사상에 편중된 독서를 반성하게 된다. 열심히 읽어나가겠다고 다짐해본다.  또한 아시아권 생태사상과 불교의 친연성이 매우 높다는 것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별 생태사상가의 명단에 그나마 장일순이 포함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생태주의 운동은 이미 100년 전부터 지구상에 활발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근대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거의 외면한 상태로 있다가 최근들어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기를 소망한다.


이제 지구별 생태사상가들의 전체적인 지도가 만들어졌으니, 관심있는 분야(인물)의 책들을 구입하여 꼼꼼히 읽어가야겠다. 가장 먼저 관심을 갖게된 사상가는 인도의 사티쉬 쿠마르다. 그가 쓴 책이 우리나라에 몇 권 번역되어 있는데, 그 중에 《부처와 테러리스트》,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를 우선 구입했다. 자이나교와 불교 양쪽의 인연이 깊은 사티쉬 쿠마르의 평이하면서도 깊은 생태사상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코로나가 아직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며 생태주의 근육을 단련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어차피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생명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것만이 우리의 자구책이다. 이 책은 그 자구책을 마련하고픈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추신> 각 사상가를 우리에게 압축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국내 필자들은 현역으로 생태주의 활동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활동에도 박수와 지원을 보낸다. 독자는 책을 구입하여 읽는 것이 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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