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욕망은 자신에게 침잠하고자 하는 이기적 힘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 타자로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1.
욕망(欲望, desire)은 종종 욕구(欲求, need)와 비교된다. 욕망과 욕구를 유사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고, 대비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욕구를 물질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실현가능한 것이라고 말하고, 욕망은 정신적, 사회문화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실현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배고플 때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배부름의 욕구로 실현가능하지만,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다. 위의 크기는 제한되지만, 좋고 맛있는 것의 크기는 측량할 수 없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분류하여 긍정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가장 낮은 차원으로 1)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에 필요한 생리적 욕구, 2) 육체의 위험을 피하려는 안전 욕구가 생물적 차원의 욕구라면, 3) 주변의 존재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소속 욕구, 4) 자기존중과 사회적 인정을 원하는 인정욕구를 거쳐, 5) 자기가 원하는 삶을 성취하려는 자아실현 욕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욕구는 다층적이고 다면적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욕구는 실현될수록 좋은 것이다.
반면 욕망은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욕망은 끝없는 탐욕, 무분별한 성적 쾌락, 타락적인 집착, 파괴적인 충동과 연관지어지며 인간 속의 있는 죄의 원천적 감정이자 금지하거나 제어해야 할 무엇으로 낙인찍혔다. 플라톤은 지혜를 철학자에게, 용기를 군인에게, 욕망을 노동자에게 배정하여, 욕망을 사회 하층민이 갖는 천한 본성인 것처럼 치부하였고, 중세의 기독교에서는 욕망과 육체성과 결합시켜 악마적인 것으로 죄악시했다.
욕망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긍정한 철학자는 근대철학자 스피노자였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욕망과 기쁨과 슬픔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을 자기 존재를 보전하려는 노력(conatus, 코나투스)이자 충동이라 보았다.
2.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욕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욕망이란, 인간의 본질이 주어진 정서에 따라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된다고 파악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 그리고 이 욕망과 존재 보전 노력(코나투스)과 의지, 충동 등의 관계를 이렇게 복잡하게 설명한다.
“이 노력(conatus)이 정신에만 관계될 때에는 의지라고 일컬어지지만, 그것이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될 때에는 충동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므로 충동은 자신의 유지에 유용한 것에서 생겨서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행하도록 하는 인간의 본질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충동과 욕망의 차이는, 욕망은 자신의 충동을 의식하는 한 주로 인간에게 관계된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욕망이란 의식을 동반하는 충동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상의 모든 것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우리는 그것을 선(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향하여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망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이라고 판단한다.”
스피노자에 와서야 의지, 충동, 욕망은 긍정된다. 긍정될 뿐만 아니라 선의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철학사에서는 욕망에 대한 의미와 평가의 스펙트럼이 넓다. 무엇이 되었든 욕망은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가장 원초적인 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현대철학으로 오면서 이 욕망은 적극적으로 학문의 범주로 들어와 니체와 프로이트를 거쳐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3.
욕망을 영어로는 디자이어(desire)라 한다. 라틴어에서 온 이 말의 어원적 형태를 살펴보면, ‘떨어지다(de)’라는 접두어에 ‘별(sire)’이 결합된 말이다. ‘별에서 떨어지다’라는 뜻이다. 윤동주의 <서시>에 등장하듯, ‘별’은 동경의 대상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윤동주는 노래했다.
우리가 근원적으로 별의 아이임을 떠올려보면, 욕망(欲望)의 대상은 별이다. 떨어진 곳으로 돌아가려는 회기본능이 바로 욕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욕망은 자신에게 침잠하고자 하는 이기적 힘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 타자로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윤동주 식으로 표현하자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다짐하는 환대의 태도와 연관되며, 그 실천의 끝없음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스피노자의 자기 보전 노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넘어서 타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욕망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너무 아전인수(我田引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