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단상 23 : 회의 혹은 의심

#회의 혹은 의심

by 김경윤
결국 우리는 의심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리 호이나키의 표현을 빌자면, ‘비틀거리며 가’는 것이다.


회의(懷疑, skeptic)는 자명한 것, 당연한 것은 없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나는 회의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회의는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반드시 견지해야 할 태도이다.

회의주의(懷疑主義, skepticism)는 인간의 인식은 모두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고 보고 진리의 절대성을 의심하고 궁극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극단적으로 정리하자면, 결국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3차원으로 이루어진다. 1) 대상에 대한 진리를 알 수 없다. 2) 알 수 있더라도 표현할 수 없다. 3) 표현할 수 있더라도 전달할 수 없다. 인식, 언어, 전달의 능력에 대한 궁극적인 회의가 회의주의다.

어떠한 대상/사건에 대하여 절대적 확신을 하는 것보다는 의심을 하는 것이 철학자의 기본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의심은 하나의 생각이나 태도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생각이나 태도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기지(旣知)의 영역에서 벗어나 미지(未知)의 영역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의심이다. 새로운 세계관과 철학적 태도는 모두 이 의심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의심만 하다 보면 결국 그 어떠한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에 빠지게 된다. 의심을 하더라도, 그 의심을 무한히 펼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의심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리 호이나키의 표현을 빌자면, ‘비틀거리며 가’는 것이다. 여기서 ‘비틀거리는 것’이 인식의 불확실성이라면 ‘가는 것’은 구체적인 ‘장소(place)’에서 살아가는 생생한 ‘몸(body)’이다. 확신만이 철학자의 길이 아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의심하지만 용기를 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 목적지에 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여러 번 쓰러져 상처를 입더라도! 의심은 용기이다. 하지만 실천은 더 한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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