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글쓰기

김해완, <뉴욕과 지성>(북드라망, 2018)

by 김경윤

그래서 나는 싱글이다. 애인이 있든 없든, 아이가 있든 없든, 언제나 싱글일 것이다. 사람이 끝없이 오고 가는 이 싱글의 도시에서 사랑을 하는 것은 용감한 행동이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것은 더욱 용감한 행동이다. 이곳에는 몸의 본능을 거부하지 않는 강한 사람들, 자신의 파트너와 아이까지 한 명의 ‘싱글’로 존중해 주는 지혜로운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기서 나는 나를 잠재적 미혼모로 여긴다. 불운한 미래를 원해서가 아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내 몸을 사랑하지만, 아이 때문에 한 남자에게 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아이가 생기게 된다면, 그로 인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내가 엄마로서 하게 될 희생을 후회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사랑을 하는 주체로서 온전해지고 싶다. 아마도 이 소망이 도착하는 지점은 아나키즘일 것이다.

(「8. 연애, 만인의 무정부주의: 엠마 골드만과 로어이스트사이드」 중에서)

올 한 해 독서에서 김해완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청년, 장년 백수들과 더불어 어떻게 하면 인문학으로 먹고살까를 고민하던 중, 고미숙의 감이당&남산강학원의 사례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배출한 청년작가 중 김해완이 쓴 책을 읽게 되었다. 김해완의 사례라면 글쓰기로는 대단히 성공한(?) 케이스에 해당하겠지만, 삶으로는 아직도 진행 중인 방랑기에 해당한다. 이 젊은 작가 김해완이 시간으로 3년 반, 햇수로 4년에 해당하는 시간을 뉴욕에서 지내며 그 뉴욕 생활을 ‘시간-지도-작가-삶’으로 엮어낸 책이 바로 《뉴욕과 지성》(북드라망, 2018)이다.

김해완은 맨땅에 헤딩하듯이, 뉴욕으로 건너가 자신과 뉴욕이란 세계에서 고유한 GPS를 구축하였다. 그가 그린 뉴욕의 지도에는 5번가와 스콧 피츠제럴드가 만나고, 990 아파트와 하워드 진이 만나며, MTA 지하철에서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만난다. 위싱턴하이츠와 이반 일리치, 자연사 박물관과 스티븐 제이 굴드, 월가와 허먼 멜빌, 23번가 공원과 올리버 색스, 로어이스트사이드와 엠마 골드만, 할렘과 제임스 볼드윈, 뉴욕과 에릭 호퍼 등이 연결된다.

이중 스콧 피츠제럴드와 올리버 색스, 허먼 멜빌, 제임스 볼드윈은 소설가이며, 하워드 진과 에드워드 사이드는 역사가이고, 이반 일리이와 에릭 호퍼는 철학자이다. 거기에 무정부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엠마 골드만과 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까지 종횡무진하는 인생 독서기가 바로 이 책의 재미이다. 다인족, 다민족, 다문화, 다욕망이 들끓으며 다종다양의 삶이 펼쳐지는 뉴욕에 혈혈단신으로 입성하여 좌충우돌하면서도 독서와 관계를 지속해온 김해완 작가가 참으로 반갑다.

그의 인문학적 수다는 스승인 고미숙 선생을 많이 닮았고, 거기에 젊음이 얹혀져 참신함이 더해진다. 고미숙 선생의 글쓰기가 수다로 치고 들어가다가 촌철살인의 결론을 도출하기에 능하다면, 김해완의 글쓰기는 이것저것을 조심스레 암중모색하다가 자신의 삶을 녹여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젊은 글쓰기가 오히려 나에게는 더욱 참신하다.


p.s. 내 주변에는 김해완과 같은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어서 그들도 자신의 삶을 녹여내는 인문학 글쓰기를 훈련하여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된다고 해서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매듭이 생기며 성장한다는 것은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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