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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21. 2020

2020 독서노트 : 아포리즘 글쓰기

김규항,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알마, 2019)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을 구분해야 한다. 고독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 차단된 고통이다. 자신과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 고독을 피한다면 늘 사람에 둘러싸여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용맹하게 고독해야 한다.(6쪽)     


내 생각을 말할 때 겸손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내 생각은 실은 내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수많은 체험과 충격과 학습과 주입 따위들이 내 신체를 거쳐 흐르다 남긴 자국 혹은 상처들이다.(13쪽)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우애나 연대 없이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소비나 물질적 축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순간, 바로 그 순간들이다.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경로는 사랑이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확신할 때 우린 어지간히 고단한 삶 속에도 행복하다.(23쪽)     

                                                                      

김규항은 《B급 좌파》와 《예수전》을 썼고,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이다. 그의 글을 페북에서 볼 때마다 이 작가는 아포리즘에 능하구나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평론가와 편집자로 일하는 변정수가 그의 글 중 압축적이고 명상할 만한 글을 선별하여 시원시원한 책으로 엮었다. 책 제목은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알마, 2019)이다.

아포리즘집이라 목차는 없지만, 큰 묶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묶음의 대문도 김규항의 문장으로 장식했다. 1. 감촉에 익숙해지면 향기를 잊기 쉽다. 2.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마음껏 놀기'다. 3. 진정 종교적인 건 더 이상 종교적일 필요가 없다. 4. 내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내 정치가 아니다! 5. 억압과 싸우는 사람에게 성찰보다 중요한 건 없다. 6. 좋은 글은 불편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 아프다. 대문 문장에서 느낄 수 있겠지만 이 글은 삶, 아이들, 종교, 정치, 성찰, 글과 예술에 대한 아포리즘을 모았다. 이전의 《B급 좌파》가 그의 인터넷 글을 그대로 선별하여 엮은 책이라면, 이번 책은 그보다 더 짧은 글의 모음이다. 마치 시집처럼 읽히는 책이다.

김규항은 글은 좌파에게는 잃어버린 상식과 원칙을 되찾게 해 주며, 우파에게는 새로운 시선으로 사회를 보는 시선을 제공한다. 그의 글은 명료하지만 역설적이고, 현실적이지만 현실 너머를 상상한다. 나는 그의 많은 생각과 공명하고, 때로는 충돌한다. 공명을 통해 우정을 느끼고, 충돌을 통해 성숙해진다. 어떤 의미에서든 그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추신>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문장을 더 소개하겠다.

- 인간의 고통은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데서 온다.

- 혁명도 해방도 구원도 결국 사랑의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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