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 시를 써요

황규관, <호랑나비> (2021.아시아)

by 김경윤

시를 써요


아프면 시를 써요

외로워도 시를 쓰고

가난한 마음이 슬퍼져도 시를 써요

버리진 느낌이 들어도 시를 쓰고

세상일이 너무 막막해도

달이 뜨지 않아도

냇물이 점점 앙상해져도

아이가 부쩍 자라서

남몰래 서러워져도

시를 써요, 시를 쓰면

더 아프고 더 외롭고

별빛은 더 힘겹게 깜빡이겠지만

시를 써요

시를 쓰는 순간만이 빛나게

빛나서 허름한 거미줄에

이슬에 머물게

시를 써요 시를 쓰면

내가 가난이 되고 고독이 되고

빗방울이 되겠지만

고작 다람쥐 눈빛이나 되겠지만

불씨만 자꾸 두근대겠지만


***

명색이 나도 작가지만, 다른 작가들의 책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물론 나도 별로 보내본 적이 없다.

작가회의 회원이지만, 꼬박꼬박 회비는 자동이체 되지만, 회의의 행사도 별로 참여하지 않는다. 게으른 탓이다. 나는 글쓰는 것 빼놓고는 거의 게으름이 생활화되었다. 어쩔 수 없다. 천성이다. 내 인생에 '번개'는 거의 없다.

그런 나에게도 책을 보내주는 후배 시인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이 황규관 시인이다. 천상 시인인 이 후배가 보내온 <호랑나비>라는 얇은 시집 - 거의 모든 시집은 얇다. -을 읽으며 덥고 끈적끈적한 공기를 버틴다. 이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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