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노자 18 : 밝은 배움이 없으니

18장. 밝은 배움이 없으니

by 김경윤

밝은 배움이 없으니

잘 가르치려 합니다.

잘 가르치지 못하니

억지로 가르치려 합니다.

억지로 가르칠 수 없으니

가르침을 포기합니다.


배움이 없다면 가르침은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살아갑니다. 학생(學生)이란 말은 ‘배우는 인생’이란 말이고, 죽어서도 지방(紙榜)에 ‘학생’이라고 써넣기도 합니다. 인생이 그러하다면 삶은 ‘태어나 배우고, 배우다 죽는’ 과정에 다름 아닙니다.

본질이 그러하다면 가르침이란 말 역시, 배우는 자가 배우려는 자와 함께 진행하는 상호작용, 혹은 공동행위의 다른 이름이겠지요. 먼저 배웠다고 잘 배운 것도 아니고, 나중에 배웠다고 못 배운 것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배움의 배치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화해의 벡터가 크면 클수록 더 큰 배움이 서로에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교사가 되려는 자 항상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성장하는 배움 없이 일방적으로 흐르는 배움은 없습니다. ‘가르침’을 일방적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있다면, 아무리 잘 가르쳐도 소용없습니다. 잘 가르쳐도 소용이 없는데, 억지로 가르치니 먹히기나 하겠습니다. 가르침(사실은 배움)과 배움은 쌍방적입니다.

그래서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나처럼 해봐’라고 말하는 사람 곁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오로지 ‘나와 함께 해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만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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