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작가론 54 : 살림의 글쓰기

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by 김경윤
원고지 노자명상 1054.jpg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쓸까요? 무엇보다 작가는 자신을 위해 글을 씁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쓰려고 하는 의지가 없다면, 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이 없다면 작가는 결코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자랑은 쓸 때에는 멋있어 보이지만 쓰고나면 허망해집니다. 남들이 해야할 칭찬을 자화자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쓴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자기회복력을 위해서 쓴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자신을 진단하고, 자신을 위로하고,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글을 씁니다.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지친 자신을 쉬게 하며, 왜곡된 자신을 바로 잡아 자신의 속도를 되찾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치유와 교정의 기능이 있습니다. 옛 사람들이 말하는 수신(修身)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공자도 말했습니다. “옛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을 위해 공부하는구나.” 글쓰기라고 다르겠습니까.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위한 글쓰기가 놀랍게도 이웃을 살리고, 세상을 환하게 만듭니다. 《대학》의 저자도 이를 알아서, “자신을 닦으니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하니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지니 세상이 평화롭게 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둠이 빛을 가릴 수 없듯이, 빛은 널리 펴저나갑니다. 깨끗이 닦은 거울이 밝게 비추듯이, 잘 닦여진 마음은 세상을 온전히 비춰줍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에게 친절함을 베풀면, 그 마음이 맑아져 빛처럼 거울처럼 환하게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를 ‘선한 영향력’이라고 말하더군요. 선과 악은 칼로 무 자르듯이 명료한 구분선을 긋기 어렵지만, 태도와 모습을 보면 영토가 보입니다. 성찰과 치유와 교정,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를 불러 일으키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남을 죽이면서 자신을 살리는 글이 아니라, 자신이 살면서 남도 살리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유도의 창시자 카노 지고로는 유도의 이념을 이렇게 말합니다. “맑은 힘을 선하게 사용하라.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함께 빛나게 하라.[精力善用, 自他共榮]”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가진 모든 활동은 모두를 살리고 모두를 빛나게 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간] 새콤달콤 쌉싸름한 철학카페 : 장자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