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파라-독사의 사유》(그린비, 2021)
장자라는 이 인물의 글쓰기는 상당히 형상적(figurative)이다. 글이 있고 그림이 있다. 그런데 글을 그림처럼 쓰는 사람도 있고, 그림을 글처럼 그리는 사람도 있다. 글과 그림은 그 어디에선가는 만난다. 장자는 글을 그림처럼 쓰는 인물이다.(22쪽)
유가는 노모스를 바로 세우려 했고, 법가가 노모스를 강고한 체제로 극단화하려 했다면, 도가는 노모스의 상대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46쪽)
지상의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기차를 탄다. 꿈속의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시를 쓴다. 궁극의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형이상학을 한다. 우리에게는 고향이 세 곳이나 있으니까, 갈 곳이 많아 좋지 않은가.(60쪽)
누구나 지적자극의 스승이 있다. 나에게 철학적으로 자극한 스승은 여럿이지만 둘만 꼽으라면, 나는 김용옥과 이정우를 꼽는다. 영역으로 치면 김용옥은 동양철학이고 이정우는 서양철학이다. 오랫동안 그랬다. 그러다가 이정우가 쓴 《세계철학사》 1권과 2권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김용옥이 동양철학을 하면서도 서양철학에 정통했듯이, 이정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두 분에게서 철학적 사유의 엄밀성을 배웠다. 특히 이정우에게는 개념의 중요성과 그 개념의 비교와 변천의 매력을 배웠다.
이정우가 《세계철학사 2》에서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전관하면서 서양철학과 비교하는 능력을 보면서 내 공부가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절감했다. 이정우는 나에게 ‘넘사벽’이었다. 더욱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차 이번에 이정우가 《장자》 내편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파라-독사의 사유》(그린비, 2021) 출간했다. 나 역시 장자를 공부하고 출간하고 강의했던 사람으로 《장자》와 관련된 책이라면 왠만하면 구입하고 있었는데, 이정우가 책을 냈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당장 주문하고, 달려가 구입하였다.
이번에 나온 이정우의 책은 그의 장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장자 해설서이다. 《장자》 내편을 빠짐없이 재해석하면서, 이정우의 시선으로, 개념으로 선명화하였다. 진리(노모스)의 절대성이 ‘독사(doxa)’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면, 진리(노모스)의 상대성을 드러낸 장자의 철학을 ‘파라-독사(para-doxa)’의 개념으로 정리되었다. 이정우다웠다. 동서양철학을 배경으로 이 파라-독사의 사유가 증폭되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쳤다. 난해하던 장자의 철학이 나름 선명하게 다가왔다.
초보적인 독자에게는 다소 어렵겠지만, 노장철학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밑줄을 그으며 띠지를 붙이며 빈칸에 정리하면서 보낸 일 주일이 정말로 행복했다. 아마도 올해 수많은 책을 읽겠지만, 예상컨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지적 자극을 받고 싶은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