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시집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생각한 것이긴 합니다만, 시인이야말로 가장 예민한 작가인 것 같습니다. 다른 장르에 비해서 시가 짧아서이기도 하지만, 유독 시인들은 단어와 문장에 신경을 씁니다. 그렇게 지어놓은 ‘말[言]들의 거룩한 집[寺]’이 시(詩)입니다. 좋은 시는 살아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습니다. 모든 단어와 문장들이 딱 거기에 있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시인들은 시를 쓸 때 함부로 쓰지 않고 한 단어 한 문장에 신경을 씁니다. 정성이 들어가 있습니다.
<짧게 잘 쓰는 법>의 저자 벌린 클링켄보그는 “글은 작가의 선택이 만드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먼 옛날 활동했던 동물의 화석 기록이 아닙니다. 그 결정들을 곱씹어보세요. 문장 하나하나가 쓰인 이유를 추론해보세요. 왜 다른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되어야 했을까? 왜 이런 단어들이어야 했을까? 왜 저런 문구일까? 왜 그런 리듬일까?”라고 물어보라고 말합니다. 생명체의 부분들이 존재이유가 있는 것처럼 글의 단어와 문장에도 존재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왜 다른 단어가 아니라 이 단어여야 하는가? 왜 다른 문장이 아닌 이 문장이어야 하는가? 왜 다른 표현이 아닌 이 표현이어야 하는가? 이유를 묻고 그곳에 그렇게 존재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작가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땅을 기름지게 하고 씨앗을 잘 고르고 성장을 잘 돌보듯이,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기름지게 하고, 단어를 잘 선택하고, 문장을 잘 돌봅니다. 그렇게 잘 돌본 문장들이 모여 문단이 되고, 글이 되고, 책이 됩니다.
작법의 차원에서 보자면, 문장은 복잡하지 않게 쓰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형식적으로도 그렇지만 내용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문장을 쓰는 게 좋습니다. 다 읽고 나서 이리저리 따져봐야 이해되는 문장은 접근이 어렵습니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정보를 담습니다. 문장과 문장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게 좋습니다. 나뭇잎에 나뭇가지와 연결되듯이. 나뭇가지가 줄기와 연결되고, 줄기가 뿌리와 연결되듯이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씁니다.
단어가 문장을 살리고, 문장이 문단을 살리고, 문단이 글을 살리는 글쓰기를 권합니다. 그래서 그 글이 독자와 연결되어, 작가를 살리고 독자를 살리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문장과 문단과 글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고 딱 그만큼의 중용(中庸)을 지키는 글쓰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작가라면 누구나 욕심을 내어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할 사항입니다. 단어와 문장과 문단이 거기에 그렇게 존재해서 은은하게 빛나는 글쓰기를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