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작가론 66 :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by 김경윤
원고지 노자명상 1066.jpg

바다에는 섬들이 있습니다. 섬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바다 밑으로 들어가 관찰하면 모든 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이 세상에 모든 섬들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도 모두 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 근원으로 내려가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시인 존 던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라는 시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


시인의 제목을 비틀어 이렇게 질문해 봅니다. 누구를 위해 글을 씁니까? 작가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저 높은 중심에서 모든 것을 관망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가장 끄트머리에서 생명을 보듬고 있는 사람입니다. 셀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숫꾼》의 주인공 홀든의 대사처럼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욕망이 최정점이라면, 작가의 욕망은 경계를 넘어 최저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법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괄호 밖으로 추방된 사람들, 시선 밖에서 헤메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 약자, 소수자, 난민에게 마음과 몸이 가는 사람이 작가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은밀한 곳, 가장 어두운 곳으로 탐색하는 사람이 작가입니다. 그 누구의 고통도 외면하지 않고, 그 누구의 신음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 그리하여 가까이 있는 사람의 죽음에만 조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가장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도 애도하는 사람이 작가입니다. 타자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반응하는 사람, 그 사람이 작가입니다.


존 던의 위의 시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 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니!” 이 때의 종은 조종(弔鐘)입니다. 이 조종에 반응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 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라는 경지에 도달합니다. 경계에 서십시오. 바다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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