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작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전도자 바울은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멋진 문체를 자랑하고, 아무리 기가 막힌 논리를 구사해도 그 속에 사랑이 없다면 작가는 속 빈 강정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사랑은 생명의 씨앗입니다. 그러니 결코 사랑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이야말로 작가가 간직해야할 최고의 보물입니다.
사랑하면 사랑의 대상을 아끼게 됩니다. 아낌이란 상대방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작가는 말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말을 아낍니다. 남용하지 않는 말, 신중한 말, 조심스러운 말을 사용합니다. 겉만 화려하고 속은 비어있는 말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말을 아끼니 문장이 길어지지 않습니다. 길지 않으니 이해가 빠르게 됩니다. 오해가 적습니다. 지루하지 않습니다. 아낌이야말로 작가의 두 번째 보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군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섬깁니다. 겸손해집니다. 잘난 척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현혹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친절합니다. 휴먼카인드(humankind)라는 말 속에는 친절함(kind)이 담겨 있습니다. 한편 섬김으로 자신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듯이, 겸손은 비굴과 아첨이 아닙니다. 사랑이 충만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겸손도 마찬가지. 겸손은 사랑에서 비롯되지만, 비굴과 아첨은 이익추구 때문입니다. 사랑이 아닙니다. 겸손은 작가의 세 번째 보물입니다.
작가의 세 가지 보물을 사랑, 아낌, 겸손이라 말했지만, 실은 하나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글을 씁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내가 되었든, 그 누가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전심전력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낙담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시작입니다. 결과가 안 좋더라도 시작이 좋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