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글쓰기 76 : 유연함을 잃지 마세요

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by 김경윤

태어나 성장하고 늙어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어린아이는 기본적으로 뼈와 근육이 아직 여물지 않아서 유연합니다. 웬만하면 다치지도 않지만, 다쳐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면, 금세 회복이 됩니다. 점점 성장하여 청년이 되면 뼈도 강해지고 근육도 튼튼해져서 힘을 쓰는 일을 잘하게 됩니다. 웬만큼 일을 해도 지치지도 않습니다. 에너지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장년을 거쳐 노년이 되면 점점 근육량도 줄어들고, 뼈도 약해집니다. 왕년을 떠올리며 무리하게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게 되면 금방 몸에서 신호가 옵니다. 쉬엄쉬엄 살아야지 전력질주하며 살면 크게 다치게 됩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해서 뼈도 튼튼 근육도 유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는 거야 막을 수 없지만, 그 시간의 영향을 조금 늦게 받을 수 있습니다. 사지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기 전에 유산소 운동이라도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이 활력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는 못 됩니다. 죄송합니다.)


나이가 먹는다고 다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도 말년에 쓴 필체가 젊었을 때와는 다른 연륜이 묻어나서 더 좋다고 평가받습니다. 피카소의 작품도 젊은 시절 만큼이나 나이가 먹어가면서 변화하는 작품세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예술세계 만큼은 나이를 먹는 것과는 비례하여 작품이 안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다른 기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 기준을 내적으로는 유연성, 외적으로는 개방성이라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유연해야 다양한 사태를 맞이해도 다치지 않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개방적이어야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쓸모없는 부분을 없앨 수 있습니다. 오로지 변치않는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자신의 상황과 상태에 맞는 다양한 하나를 끊임없이 생산해낼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것들은 점점 딱딱해집니다. 살아있는 것들만이 부드럽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에 갇혀서 나오지 않으려는 작가, 자신이 이룩해놓은 영광만을 누리려는 작가, 세상의 변화에는 눈과 귀를 닫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작가는 유연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폐쇄적인 세계에 안주함으로 개방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유연성을 상실한 작품세계는 점점 형해화(形骸化)되어 죽어갑니다. 개방성을 상실한 작품세계는 앞으로가지 못하고 공전(空轉)만 할 뿐입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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