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칼럼쓰기 10 : 월동(越冬), 겨울 건너기

<고양신문> 인터넷판(2022.10.19일자)

by 김경윤

무더운 여름이 어제인 것 같더니 어느새 가을입니다. 자유농장에서는 김장을 위해 심어놓은 작물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알타리무를 거둬서 김치를 담갔습니다. 속재료를 씻고 다듬고 갈아 준비하고, 무는 뽑아서 다듬고 자르고 절이고 씻어서 속재료랑 섞었습니다. 6명의 중년농부들이 가져온 김장통에 하나 가득 담아 차에 실으니 마음이 뿌듯하고 기분이 넉넉합니다. 그래요, 중년 남자 혼자서는 해내지 못하는 것을 여섯이 모여 진행하니 불가능하지 않네요.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농사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고양시로 이사 와서 도시텃밭 농사를 지은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사 먹을 줄만 알았던 생활 속에 지어 먹는 노동이 들어오니 세상이 조금은 건강해진 것 같습니다. 이런 좋은 날이 계속되길 바라지만, 주변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습니다.


끝날 것만 같았던 코로나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감염자 수가 줄어드나 싶었는데,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 겨울에는 독감도 유행이라고 하니, 예방주사라도 맞아야겠네요.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 상태의 경제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한미일 군사훈련은 냉전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군사력으로 평화를 지킬 수는 없습니다. 생태위기가 계속 진행 중인데도, 현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의 위험은 고조되고 있는데, 은폐로 대응합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을 들은 게 어제 같은데,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된 것처럼 암울합니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되어야겠지요. 예전에는 잘 사는 게 꿈이었다면, 이제 별일 없이 사는 게 행복임을 압니다. 탄생보다 죽음이 더 익숙해진 나이라서 그럴까요? 주변에 지혜롭고 맘 착한 어른들 일찍 돌아가시고, 이제는 내 또래의 친구들이 순서를 어기고 서둘러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이 또한 우주의 순리겠지요. 어차피 한 번 죽는 인생이라지만, 먼저 가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지만, 차라리 생명은 모든 것에 앞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념도 종교도 국가도 법도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약한 생명일수록 더욱 소중하게 지켜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어른들이 어린이와 청년을 지켜야 합니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옵니다. 곧 땅에 서리가 내리고, 나무는 잎과 열매를 떨구고, 몸속에 있는 수분을 땅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철새들은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따뜻한 땅으로 날아갈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이 겨울의 혹독한 추위는 좌와 우를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동서뿐만 아니라 남북도 추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성이든, 늙었든 젊었든, 건강하든 아프든, 하얗든 까맣든, 붉든 노랗든, 빨갱이든 파랭이든, 기독교도든 불교도든, 아니면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이 추위를 같이 견디고 건너야 합니다. 생명을 지켜내는 일은 미천하고 고귀함의 구분이 없습니다. 온기를 나누고 손길을 뻗는 일은 이 겨울을 이겨내는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다행히 하늘은 우리에게 겨울을 준비할 약간의 시간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월동(越冬), 겨울을 무사히 건너가도록 차분히 준비해야겠습니다. 한해 농사를 마무리짓고 월동준비를 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주변을 잘 갈무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대비해야겠지요. 귀한 종자씨앗을 남겨두듯 생의 소중한 자산은 후손을 위해 남기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겨울 건너기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고양신문 (mygoyang.com)


매거진의 이전글2022 칼럼쓰기 9 : 브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