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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an 09. 2023

장자를 달린다 24 : 갇혀있는 사람들

- 24편 <서무귀(徐無鬼)>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夫爲天下者]

어찌 말을 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亦奚以異乎牧馬者哉]

그저 말을 해치는 것을 없애주면 될 뿐입니다. [亦去其害馬者而已矣]”

황제는 머리를 숙여 큰절을 두 번하고, [黃帝再拜稽首]

그 소년을 천사(天師)라고 부른 뒤 물러났습니다. [稱天師而退]          


감옥에 있는 사람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이나 제물, 지식, 이름 등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외여행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늘 말하는 사람도 일에 갇혀 국내여행조차 번번이 실패합니다. 의무에 갇히고, 관계에 갇히고, 돈에 갇힙니다. 《장자》 잡편의 두 번째 편인 <서무귀(徐無鬼)>는 바로 이런 갇힘에서 벗어나 큰길을 걷는 큰사람이 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처음의 에피소드는 편명(篇名)이기도 한 은자(隱者) 서무귀가 위나라의 무후를 만나 나눈 대화입니다. 겉모습으로는 초라한 서무귀가 갇혀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권력과 명분에 취해 백성을 괴롭히고 전쟁을 밥먹듯이 하는 위무후야말로 갇힌 자입니다. 최고로 실력 있는 신하들에 호위를 받는 황제도 구자산을 찾지 못해 길에 갇힙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가 천하에 갇힌 꼴입니다. 혜자와 같은 사상가는 논쟁에 갇힙니다. 포숙아는 선함에 갇혀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원숭이는 재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남백자기의 아들 곤은 기대하지 않았던 복에 갇혀 다리가 잘려나갑니다.


지식인은 지식에 갇히고, 평론가는 관점에 갇히고, 관료는 지위에 갇힙니다. 군인은 전쟁에 갇히고, 법률가는 법전에 갇히며, 농부는 땅에 갇힙니다. 유발 하라리의 말마따나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느라 스스로 가축이 되어 땅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대출자는 은행에 갇히고, 집장사꾼은 집에 갇힙니다. 영혼을 끌어 모아 대출받아 구입한 집이 도리어 영혼을 망치게 됩니다. 직장인은 성과에 갇혀 피로하게 살아가거나 과로사합니다. 오호라, 우리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이 갇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위무후에게 서무귀는 충고합니다. “백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마십시오. 그 사랑이 백성을 해치는 시초가 됩니다. 정의를 위해 전쟁을 그만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말로는 그렇게 하시지만 결국 전쟁을 일으키는 시초가 됩니다. (......) 다른 나라의 백성을 죽이고 남의 나라의 땅을 빼앗아 차지함으로써 자기의 육체와 정신을 만족시키려 하는 자는 그 전쟁이 아무리 훌륭한 명분을 갖고 있더라도 과연 어느 쪽이 좋은 건지 알 수 없으며, 설사 전쟁에 이긴다 하더라도 승리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임금께서는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디 마음속의 정성을 닦음으로써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세상을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그래야 백성들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임금께서 어찌 전쟁을 그만두시겠다는 생각조차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일곱 명의 현자들과 동행하였으나 길을 잃은 황제가 길을 가르쳐준 어린 목동이 기특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도 아느냐고 묻자, 동자는 한참만에 대답합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어찌 말을 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그저 말을 해치는 것을 없애는 것일 뿐입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국민들은 피해만 입었다는 것을 어린 목동도 알았을까요? 제발 해치지나 말라고, 백성을 해치는 것만 없애달라고, 그것이 정치가 아니겠냐고 답합니다. 이 대답에 놀란 황제가 그 목동에게 두 번이나 큰 절을 하고, 하늘이 내린 스승[天師]이라 부릅니다.     


걸핏하면 논쟁을 해서 상대방을 화나게 만드는 혜자에게 장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의 집에 묵을 때는 문지기와 싸우지 말고, 배 안에 있을 때는 뱃사람과 싸우지 말게나. 배가 물가에 닿기도 전에 뱃사람이 원한을 품는다면 자네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일세.”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 춘추오패의 자리에 오른 제환공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관중이 임종하려 하자, 환공이 누구에게 나랏일을 맡겨야 하는지, 관중과 가장 친한 포숙아는 어떠냐고 묻습니다. 관중은 안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포숙아는 청렴결백하고 선하기만 한 선비라, 자신과 다른 선비와 친하게 지내지 못합니다. 차라리 습붕에게 맡기십시오. 그의 사람됨은 위로는 임금님의 존재는 잊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그는 황제와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있고, 자기만 못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자기의 덕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성인이라 말하고, 자기의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현인이라 말합니다. 현명한 사람으로서 남에게 군림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현명한 사람으로서 남의 아래에 처신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나라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집안에서는 모든 것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득이하다면 습붕이 좋을 것입니다.” 포숙아가 인위적, 윤리적 인간이라면 습붕은 자연적, 무위적 인간입니다. 습붕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고, 남의 아래에서 처신하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남의 허물을 모두 알려하지 않고, 자신이 모르고 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늘과 땅의 위대함을 따르는 자. 그가 바로 갇힘에서 벗어난 대자유인입니다. 대자유인은 “만물의 근원이 하나임[大一]을 알고, 그 위대한 고요함[大陰]을 알고, 분별없음[大目]을 알고, 조화롭고 평등함[大均]을 알고, 규칙이 있음[大方]을 알고, 진실함[大信]을 알고, 안정됨[大定]을 아는 경지에 도달합니다. 하나임을 알기에 두루 통하고, 고요함을 알기에 조용히 해결하며, 분별없음을 알기에 달관하고, 평등함을 알기에 터득하고, 규칙을 알기에 지키고, 진실함을 알기에 의심하지 않고, 안정됨을 알기에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자유인의 길을 의심하지 말고 걸으십시오. 위대한 불혹[大不惑]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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