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같이 사소한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우리는 항상 사소한 것들의 도움 및 방해를 받고 있지 않냐고. 강아지가 꼬리만 흔들어도 웃을 수 있지 않냐고, 미세먼지만 심해도 우울하지 않냐고, 소음만 심해도 떠나고 싶지 않냐고. 그리고 또 말하고 싶다. 몇 문장을 옮겨 적고 큰 소리로 외우는 것은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사소한 일’ 이란 말을 언젠가는 ‘자그마한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것이라고.(41쪽)
CBS 라디오 PD 정혜윤이 쓴 《아무튼, 메모 -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위고, 2020)를 즐거운 마음으로 다 읽었다. 딱히 메모에 관한 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메모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정혜윤을 믿고 샀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다. 나에게는 정혜윤의 책이 두 권 있다. 작가의 옆모습이 매력적으로 앞표지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민음사, 2012)라는 달달한 책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인터뷰하여 에세이 형태로 쓴 《그의 슬픔과 기쁨》(후마니타스, 2014)라는 진지한 책이다. 두 권 모두 인상적인 책으로 기억된다.
나 또한 메모광이다. 책을 읽고 기억하고픈 문장들을 페북으로 올리거나, 이런저런 잡스러운 생각 중 기억하고 싶은 것은 메모장에 남긴다. 이 독서노트 역시 일종의 메모장이라 할 수 있다. 독서노트를 쓸 때 한쪽을 넘기지 않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는다. 말이 길어지면, 내용은 자세히 정리할 수 있지만, 독서 후 바로 드는 인상을 남길 수는 없다. 독서노트는 메모를 하듯, 독서 직후에 쓴 글이다. 정제된 글이 아닐지는 몰라도, 날 것의 느낌을 그대로 기록한다.
메모한 것 중이 확장되면, 글감이 되고, 글감이 질서를 갖추면 책이 된다. 글감이나 책이 되지 않더라도 메모는 메모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오래 묵혀둔 메모를 읽어보면 당시의 내 모습이 떠오르고, 당시의 읽거나 경험한 것들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사진으로 옛 모습을 추억하듯, 메모로 옛 생각을 떠올린다.
요리의 재료가 좋아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듯이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화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메모할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메모장 안에서 우리는 더 용감해져도 된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꿈꿔도 좋다.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살지 몰라도 쓴 대로 살 수는 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따라 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 안에 괜찮은 것이 없다면 외부 세계에서 모셔 오면 된다.(67쪽)” 요리사는 평소에 재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듯이, 작가는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해두어야 한다. 내면의 소리이든, 외부의 음성(글)이든 재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메모가 좋은 것은 적다 보면 그러한 생각이 새겨진다는 것이다. 책의 부제처럼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메모는 한 줌의 사랑이며, 한 줄기 빛일지도 모른다. 정혜윤은 책의 끝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삶은 결국 평생에 걸친 몇 개의 사랑으로 요약될 것이다. 어떤 곳은 밝고 찬란하다면 그 안에 빛이 더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해 한 해 빛을 따라 더 멀리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164쪽. 책의 마지막 문단)”
메모는 작은 행위이지만, 작은 씨앗이 발아하여 성장하면 결실을 맺듯이, 메모가 확장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농부가 좋은 씨앗을 골라 잘 보관하듯, 작가가 평소에 메모하는 버릇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