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Apr 04. 2020

2020 독서노트 : 나쓰메 소세키 독후감 모음집

《나쓰메 소세키, 시작해 볼까요?》(현암사, 2016)

내 주인은 나와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 좀체 없다. 직업은 선생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식구들은 그가 뭐 대단한 면학가인 줄 알고 있다. 그 자신도 면학가인 척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식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가끔 발소리를 죽이고 그의 서재를 엿보곤 하는데, 대체로 그는 낮잠을 자고 있다. 가끔은 읽다만 책에 침을 흘린다. 그는 위장이 약해서 피부가 담황색을 띠고 탄력도 없는 등 활기 없는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 주제에 밥은 또 엄청 먹는다. 배터지게 먹고 나서는 다카디아스타제라는 소화제를 먹는다. 그다음에 책장을 펼친다. 두세 페이지 읽으면 졸음이 몰려온다. 책에 침을 흘린다. 이것이 그가 매일 되풀이하는 일과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쪽)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의 지성 우치다 타츠루가 흠모하는 작가, 그래서 그의 글감에 자주 등장하는 그 작가의 작품, 재일 지성인 강상중이 아예 그의 작품에 대한 한 권의 책을 썼던 작가, 나에겐 아직도 오리무중이지만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작가인 하루키가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던 작가가 바로 나쓰메 소세키이다. 일본에서는 국민작가로 유명한 이 작가는 종종 중국의 루쉰, 한국의 이광수와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루쉰과 이광수가 계몽주의적 지식인이라면 나쓰메 소세키는 철저히 개인주의적 지식인이다.

그런데 왜 나쓰메 소세키는 지금까지도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읽히고 있을까? 강상중의 말을 빌리자면, “소세키만큼 비서구 세계의 ‘근대’가 강요하는 ‘병’에 전심전력으로 격투하고 그 앞날까지도 통찰할 수 있었던 희유한 지성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병’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나’(자아)가 자유로운 존재로 나타났을 때 불가피하게 그 내부에 안지 않을 수 없는 아이덴티티(‘자기동일성’)와 ‘타자’(타아)의 갈등 문제다. ‘나’는 ‘나’이면서도 ‘타자’를 그 ‘타자성’에서 승인하고, 그럼에도 자신을 믿고, ‘타자’를 믿을 수 있을까? 거기에서는 ‘내’가, 그리고 ‘타자’가 불투명한 채 ‘수수께끼’로서 나타나는 ‘근대’라는 시대의 근원적인 배리가 강하게 의식되고 있다.”는 오늘날에도 가장 첨예한 철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주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ebook으로 현암사편집부가 제작한 《나쓰메 소세키, 시작해 볼까요?》(현암사, 2016)이다. 가장 반가운 것은 이 ebook이 공짜로 다운 받아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암사가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을 맞아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이 완간하면서, 전집 14권의 말미에 수록된 문인 14명의 독후감을 모아 한 권으로 만들었다. 영악한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이 한 권만 읽어도 전집을 읽은 것 같은 효과를 나름 거둘 수 있다. 게다가 독후감을 쓴 사람들은 나름 꽤 유명한 작가(학자)들이어서, 그들만의 눈으로 본 나쓰메 소세키도 같이 감상하는 ‘일타쌍피’의 축복이 따라 온다.

독후감을 쓴 작가의 이름만 거론하면, 시인 장석주, 소설가 백가흠, 문학평론가 황호덕, 소설가 강영숙, 문학평론가 신형철, 소설가 장정일, 소설가 김연수, 시인 김경주, 로쟈 이현우, 라디오 프로듀서 정혜윤, 소설가 조경란, 문학평론가 강유정, 소설가 정이현, 그리고 도쿄대 명예교수 강상중까지 쟁쟁하다. 이 작가들 중에서도 맨 마지막에 글을 장식한 강상중의 글은 주목할만한 데, 그의 예리한 지성으로 소세키가 동아시아 역사에서 어떤 지위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깔끔하게 정리한 것에 새삼 감탄하였다. 이러한 감탄은 강상중이 쓴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AK 커뮤니케이션즈, 2016)의 구매로 이어지기까지 했으니, 역시 책은 책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나는 이미 현암사판 전집 14권을 모두 구입하여 전집 서재에 전시해놓았지만, 전집이 아니라 낱권을 구입하고픈 독자들은 이 공짜책을 다운받아 읽어본 후 자신이 읽어보고 싶은 책만 고르면 된다.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은 전집에서 이빨 뽑듯이 뽑아 읽어서 모두 읽은 것은 아니기에 내년도쯤에는 한 달쯤 시간 내어 전체를 읽어볼 계획이다.(여기에 동참하고 싶으신 분은 연락주시길)      

P.S. 앞에 인용한 구절은 나쓰메 소세키가 첫 번째로 쓴 장편에서 인용한 것이다. 고양이 시점에서 주인을 관찰하여 말하고 있는데, 내 이야기를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라다가, 씩 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 독서노트 : 하루키스트의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