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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pr 02. 2020

2020 독서노트 : 하루키스트의 글쓰기

이지수, 《아무튼, 하루키》(제철소, 2020)

(아내가 화를 낼 때면 얌전히 샌드백이 되는 수밖에 없다며) “현명한 뱃사공처럼 그저 목을 움츠리고 뭔가 다른 생각을 하며 무지막지한 태풍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멕시코의 피라미드에 올라갔다 내려올 때) “몸 상태가 안 좋은 스파이더맨 같은 꼴로 바위에 매달리듯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어째서인지 답장 쓰기를 잘 미룬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쁜 뜻은 없는데 왠지 답장을 못 쓰겠더군요. 난데없는 뒷산 원숭이 같은 놈이라 여기고 이해해주십시오. 다음에 도토리를 모아서 갖고 오겠습니다.” (114~5쪽)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를 말한다. 나는 이미 김한민이 쓴 《아무튼, 비건》(위고, 2018)을 읽고 좋은 시리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만약에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무튼, 마르크스》나 《아무튼, 예수》를 쓰면 재밌겠다는 공상을 해본 적도 있다. 이번에 내가 구입한 ‘아무튼 시리즈’는 정혜윤이 쓴 《아무튼, 메모》(위고, 2020)와 이지수가 쓴 《아무튼, 하루키》(제철소, 2020)이다. 이 시리즈의 좋은 점은 편안하게 읽히는 에세이라는 점과 가격이 9,900원이라는 점이다. 

본래는 《아무튼, 메모》만 구입하려고 했으나, 하루키에 꽂혀 《아무튼, 하루키》도 구입한 것인데, ‘메모’는 내가 글쓰기 수업에 팁이라도 얻으려는 실용적 목적에서 구입한 것이라면, ‘하루키’는 왜 사람들은 하루키를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 충족 목적으로 구입한 것이다. 자, 그러면 어떤 책부터 읽을 것인가? 실용성이냐, 호기심이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호기심을 못 참는 사람이라, 《아무튼, 하루키》를 손에 쥐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소설가이자, 매년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오를 것이라 예상하는 작가라 국내에서도 수많은 하루키 광팬들이 있다. 나는 베스트셀러는 잘 구입하지 않는 편벽된 면도 있고, 일본작가에 대한 묘한 민족주의적 거부감(?)도 있는 편이라 하루키를 멀리했다. 주변에서 하루키 어쩌고저쩌고 시끄러울 때에도 소 닭 보듯이 덤덤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우치다 타츠루라는 인문학적 거장의 작품을 읽으며 민족주의적 거부감을 희미해지고 나스메 소세키라는 작가를 알게 되면서 민족주의적 감정이 소멸할 때쯤, 뒤늦게 하루키의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려고 했었다. 그렇게 구입한 책만 따져 봐도 10권을 족히 넘으리라. 

하지만 부끄럽게 고백해보자면, 나는 하루키의 소설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다. 그의 소소하고 서구적이며 기름진 문체가 나와는 너무도 궁합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름 생각한다. 차라리 그의 소설보다는 그의 산문은 읽어볼 만했는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현대문학, 2016)은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우치다 타츠루의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바다출판사, 2016)를 읽고 나서 이제는 하루키를 읽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군, 하고 소심하게 하루키 독서를 다짐했었다. 의무로서의 하루키 읽기?!

그래도 아직 5%가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다. 국내의 하루키스트들은 도대체 하루키의 무엇에 열광하는 것일까? 하루키의 위성마냥 주변만 빙빙 돌다가 결국 수명을 다하지 싶어, 나에게 하루키로 돌진할 엔진을 달아줄 책을 찾던 중 《아무튼, 하루키》를 읽게 되었다. 지은이 이지수씨는 번역가로 하루키의 작품을 번역하는 것을 일생일대의 과제로 삼고 있다. 그의 주변에는 하루키스트들이 많아 보인다. 책을 읽어보니 하루키에 대한 글이라기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하고 육아하고 변역일을 하는 소소한 일상을 담은 생활 에세이다. 아뿔싸, 제목에 낚였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술술 끝까지 읽힌다. 읽다가 하루키와 함께 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하루키스트지. 일상에서 하루키를 읽고, 하루키를 생각하고, 하루키의 말을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는 삶, 하루키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하루키를 좋아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낚였지만 속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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