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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pr 01. 2020

2020 독서노트 : 이옥의 글쓰기

안대회, 《연경, 담배의 모든 것》(휴머니스트, 2008)

2. 담배를 피우기 적절한 때


달빛 아래서 피우기 좋고, 눈이 내릴 때 피우기 좋다.

비가 내릴 때 피우기 좋고, 꽃 아래에서 피우기 좋다.

물 위에서 피우기 좋고, 다락 위에서 피우기 좋다.

길을 가는 중에 피우기 좋고, 배 안에서 피우기 좋다.

베갯머리에서 피우기 좋고, 측간에서 피우기 좋다.

홀로 앉아 있을 때가 좋고, 친구를 마주 대하고 있을 때가 좋다.

책을 볼 때가 좋고, 바둑을 두고 있을 때가 좋다.

붓을 잡고 있을 때가 좋고, 차를 달이고 있을 때가 좋다.(106쪽)     




○○ 고등학교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 학생이 강의 끝에 “선생님, 학생들이 담배 피워도 되니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뒷자리에는 담임이 앉아서 강의를 같이 듣고 있던 참이라 긴장감이 흘렀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기억한다. “담배에도 예의가 있으니까, 그 예의를 잘 배워서 피우면 되겠죠. 하지만 요즘 담뱃값이 너무 비싸고 구입하기도 어려우니 직접 담배농사를 지어보면 어떻겠습니까? 마침 저와 동료들이 운영하는 주말농장에서 담배를 직접 농사 지어보면 좋을 것 같네요. 농사를 지으면 생산부터 가공, 소비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배울 수 있어 좋고, 자신이 직접 제배한 담배로 만들어 피울 수 있으니 일거양득입니다. 담배농사를 강추합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담임의 얼굴을 살피니, 담임이 씩웃는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이옥의 《연경(烟經)》이다. 이른바 ‘담배경전’! 이옥은 정조 때 선비로 문체반정의 희생자가 되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원하는 글쓰기를 하며 살았다. 그는 벼슬보다는 삶의 구체적인 현장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소품체(小品體)를 즐겼는데, 이러한 문체를 선비의 타락이며 유교적 질서의 혼돈이라 생각한 정조는 법으로 엄금하고 엄하게 다스렸다. 이러한 문체에 대한 통제를 문체반정이라 한다. 문체반정으로 인해 선비들의 자유분방한 글쓰기는 많이 위축되고 탄압되었는데, 이옥뿐만 아니라, 연암 박지원, 간서치 이덕무 등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체를 썼던 지식인들 역시 이로 인해 고생하였다. 

엄격한 형식을 자랑하는 고품체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실정과 현실을 곡진하게 그려내는 소품체 문장은 당대 실학자들의 실험정신의 산물이었다. 이옥은 이러한 정신에 입각하여 저잣거리의 여인의 모습이나, 자연풍경, 민중의 생활상을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옥에 대한 글을 자세히 읽고 싶은 사람은 《완역 이옥전집-전5권》(휴머니스트, 2009)를 읽으면 좋겠다. 간단히 맛을 보고 싶은 사람은 《낭송 이옥》(북드라망, 2015)를 권하며, 이옥의 시대정신을 체감하고 싶은 사람은 채운이 쓴 《글쓰기의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북드라망, 2013)을 권한다. 

다시 《연경(烟經)》으로 돌아가자. 담배 심기로부터 키우기, 보관하기, 좋은 담배 식별법, 담배 도구, 담배 피우는 법 등 담배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책은 비흡연자이자 한문학자인 안대회에 의해 《연경, 담배의 모든 것》(휴머니스트, 2008)으로 완역되어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안대회는 번역과 주석을 달면서 담배와 관련된 다양한 글들도 같이 소개하고 관련 그림자료들을 풍부하게 수록함으로써 조선시대 담배 이야기를 총망라(?)하는 학자적 성실함을 보였다. 부록으로 원문과 영인본까지 수록하였으니 10년 공부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옛 지식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소소한 일상사라도 글로 정리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그러한 글이 민중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던 실학자의 기본적인 태도였던 셈이다. 닭을 키우면 《계경(鷄經)》을 썼고, 물고기를 관찰하면 《어보(漁譜)》를 지었으며, 요리를 하면 《식헌(食憲)》을, 술을 마시면 《주보(酒譜)》를, 차를 마시면 《다경(茶經)》을 지었다. 요즘으로 치면 백과사전식 실용서인데, 비단 전문가만 그러한 글을 쓴 것이 안니라 그러한 소재를 깊이 즐기고 나누려는 지식인들의 일상사였다. 2020 트렌드에 나오는 ‘업글인간’의 모습을 선취하고 있는 셈이다.

글을 취미(趣味)로 쓰느냐 업(業)으로 쓰느냐는 글의 깊이와 넓이와 체계의 차이에서 온다. 독자와 작가의 차이는 그리 멀지 않다. 널리 읽고, 깊이 묻고, 체계적으로 글을 써보자. 하나의 소재에 몰두해보자. 이옥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아름다움 모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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