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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31. 2020

2020 독서노트 : 오에 겐자부로의 책읽기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위즈덤하우스, 2015)



어느 순간부터 독서 방식을 바꾸면서 ‘나의 문체, 문장을 바꾸자’는 쪽으로 흘러갔어요. 그런 생활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제게 와타나베 선생은 앞으로 이렇게 독학을 하라고 책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은 3년마다 읽고 싶은 대상을 새로 골라서 그 작가, 시인, 사상가를 집중해서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말이죠, 자기가 읽어온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아울러 자신의 새로운 언어 감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작용이 발생하는 거예요. 문체에 변화를 주고자 이제껏 읽지 않던 방향의 책도 고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3년마다 제 문체를 바꿔가는 방법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68~9쪽)   

  

1935년에 태어난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군정기에 자라난 일본 전후세대이다.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해는 1994년이다. 그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천황이 문화훈장을 내리지만 거부함으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1957년(22세)부터 지금까지 글만 써서 살아왔으니 전업작가로 63년을 살아온 셈이다. 2006년도에는 집필 5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에서 ‘오에 겐자부로상’이 제정되기도 했으니, 살아있을 적에 자신의 이름의 문학상을 가지게 된 (내가 알기로는) 유일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는 집필 활동 외에도 반전평화와 휴머니즘적 가치를 옹호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소설가이기에 앞서 치열하게 읽어대는 독서가였다. 그런 그가 50년 넘는 자신의 독서이력과 그 독서가 자신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자상하게 설명한 책이 바로 《읽는 인간》(위즈덤하우스, 2015)이다. 일본에서는 2007년도에 나왔으니 그로부터 9년 후에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 시기부터 읽었던 자신의 독서이력을 밝히면서. 그러한 독서가 자신의 소설쓰기에 얼마큼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정교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야말로 ‘치열한 글읽기로 이루어진 심리학적이면서 인문학적인 글쓰기’의 비밀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그가 특히 권장하는 독서법은 한 작가에 3년 동안 몰두하는 것이다. (몰두의 방법과 효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시길)  

오에 겐자부로가 책을 읽고 글쓰기에 활용하는 방식을 소개하려면 너무 많은 지면을 요구하므로, 아쉽게도 읽은 책의 목록(작가)만을 소개하면,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시몬느 베유, 랭보, 엘리엇, 에이츠, 포, 블레이크, 플라톤, 호메로스, 사무엘 베케트, 아마르티아 센 등 서양의 고전작가로부터 근대 작가를 망라하고 있다. 포인트는 책의 소개가 아니라 책에 나오는 특정한 대목에 대한 치열한 독서, 암기, 해석, 소설적 변형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소개되는 《오리엔탈리즘》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와 문학적 절친일 뿐만 아니라 만년의 오에에게 커다란 영감을 준 사람으로 등장한다. 특히 '만년의 글쓰기'란 어떻게 가능한가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들은 나같이 나이가 들어가는 작가에게는 많은 위로와 격려와 영감을 주었다(고 고백해야겠다).

단 한 권의 책이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고, 그 이후로 한 번도 물러섬 없이 독서와 집필을 했던 오에 겐자부로의 치열한 독서법과 집필법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매우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거장은 어떻게 읽기를 쓰기와 연결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오에 겐자부로의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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