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자는 책 한 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기에 핵심이라 할 만한 하나의 장章을 요약하는 것부터 시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이 초급 서평이다. ‘나는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의 핵심은 여기에 담겨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 부분을 요약정리하고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이나 평가를 간략하게 덧붙인다.’ 이런 식으로 작성한 것이 초급 서평인 것이다. 중급 서평의 첫 단계는 책 한 권을 대상으로 한다. 이는 책 전체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서술하고 그것에 대한 평가를 덧붙인 것이다. 중급 서평의 둘째 단계는 비판적 평가를 덧붙인 것이다. ‘비판’을 위해서는 사실상 해당 책의 내용을 벗어날 것이 요구되므로 이 단계에 이른 서평은 고급 서평의 초입에 들어선 것이라 할 수 있다. (78쪽)
《인문 古典 강의》, 《역사 古典 강의》, 《철학 古典 강의》, 《문학 古典 강의》라는 강의록을 책으로 냄으로써 문사철(文史哲) 세 영역에서 그 기량을 확인했던 강유원의 신간 이름은 《책 읽기의 끝과 시작》(라티오, 2020)이다. 491쪽의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책은 강유원이 15년간 쓴 서평을 모은 책이다. 그동안 소개한 책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쉬운 수준의 서평집이었다면 이 책은 좀 더 고급독자를 위한 서평집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전문지식을 자랑하고, 치밀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강유원이 스스로 말했듯이 서평은 초급과 중급과 고급으로 나눌 수 있다. 초급 서평은 한 권이나 한 장(章) 정도를 요약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평가를 덧붙이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대부분 우리가 읽고 있는 서평(독후감)은 초급 서평인 셈이다. 중급 서평은 책 한 권 전체를 재구성하고 서술하여 평가하는 것으로 거기에는 비판적 평가가 덧붙여진다. 초급이 요약과 감상 중심이라면, 중급은 거기에 재구성과 비판이 추가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급 서평은 책뿐만 아니라 책과 연관된 저자, 배경 역사, 관련된 다른 저술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쓰는 주제 서평으로 그것의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 논문이다. 논문도 큰 범위 내에서는 서평의 일종이다.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주제 서평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책에 접근하는 방식들을, 2부는 서평의 여러 형식들을, 3부는 시대를 읽는 주제 서평들을 모았다. 이 책의 미덕은 글의 앞에 서평을 쓰는 원칙과 항목들을 나열하고, 그의 구체적인 형태인 저자의 서평을 병행하여 싣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단점(?)은 그가 예로 들고 있는 서평들이 배경지식 없이 쉽게 읽을 수 없는 학문적 문장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점은 쉬운 서평에 식상하여 좀 더 깊이 있고 전문적인 내용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장점으로 바뀐다.
개인적으로는 ‘근대와 정치, 그리고 인간’을 주제로 시대를 읽는 주제 서평들이 흥미로웠는데,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줄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히든 트랙처럼 맨 뒤에 추가되어 있는 ‘아주 긴 서평’인 <장미의 이름> 읽기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는데 - 에코의 소설은 정말로 흥미진진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 강유원이 써서 부록과 같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던 것이다. 그 작은 단행본이 절판이 되면서 아예 이번 책 말미에 전문을 수록함으로써 책의 두께를 한층 부풀려주었다. 나는 이 작은 논문집과 같은 단행본을 구입했다가 지금은 망실한 상태였는데, 이 글을 읽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러니까 강유원의 이번 서평집은 책 두 권 분량을 한 권에 합쳐놓은 것이다. 25,000원이라는 책값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는데, 흔쾌히 구입하는데 한몫했다.
P.S. 그런데 왜 책의 제목이 ‘책 읽기의 시작과 끝’이 아니라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일까? 나 나름 상상한 것이 있지만, 그 답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