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친구가 쳤다. 가파도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이 딸이 손주를 낳아 두 달 동안 외지로 나가는데,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다섯 마리를 보살필 수 있는 고양이집사를 원했고, 친구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덜컥 신청해 버린 것.
친구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으니 자격이 미달되지는 않았고, 집세도 안 낸다고 하니 싼 값에 호젓하니 휴가 두 달을 보낼 수 있다는 경제적 속셈도 있었을 것. (나중에 정산해 봐야 알겠지만.)
하지만 장소가 제주도 최남단에 속하는 가파도였고, 하필 체류기간 중에 장마와 폭풍이 몰려온다고 한다. 게다가 파도가 조금이라도 높게 일고, 안개가 끼거나 비가 몰아 치면 배 한 편 뜨지 않고 고립되는 섬이다.
친구는 이미 6월 중순에 입도해 있었고, 계약 기간은 8월 중순까지 두 달인데, 열흘이 지나자 홀로 지내기 힘든 듯했다. SOS가 날아왔다. 이런 때 아니면 바쁘게 지내다 휴가 한 번 번번이 쓰지 못할 것 같아, 가족에게 가파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가족들은 반색을 하며 오히려 격려해 준다.(무슨 마음이지?)
가족의 허락도 받았겠다 큰맘 먹고 7월 3일 김포공항에 갔으나 제주도의 기상 약화로 결항하여 허탕을 치고, 다음날인 오늘에야 제주도에 겨우(?) 도착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가파도에 가는 운진항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배편은 이미 끊겨 버렸다. 허기는 지고, 묵을 곳은 없고.ㅠㅠ.
야놀자로 검색하여 급히 숙소를 정하고 작고 예쁜 향토 식당에 들어가 제주도 토종음식으로 배도 채우고, 알코올도 채웠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누우니 여독이 밀려온다.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