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마지막 일기를 쓰기로 했다. 나는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잘 지냈다. 물론 시행착오와 실수도 했지만, 먼저 이곳에 와서 생활했던 친구와 가파도에 사는 주민들(특히 가파도 매표소 직원) 덕분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하루의 루틴을 어떻게 꾸리는지 일주일 동안 나랑 같이 지내면서 몸으로 보여주었다. 꾸준한 식사와 운동은 다 친구 덕분이다. 주민들은 내가 뭔가 부족할 때, 그 부족함을 어떻게 채우는지, 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날씨보기, 낚시하기, 장보기, 맛집 찾기, 곤란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문제해결하기를 알려주었다.
덕분에 나는 나만의 루틴을 찾을 수 있었고, 하루를 마치는 리추얼로 기도하듯이 석양을 바라보고 사진 찍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일기 쓰기도.
2.
그리고 나와 함께 지냈던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먹자, 비비자, 놀자, 숨자, 싸우자, 달리자)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부족한 집사를 즐겁게 했다. 주인(?)에서 집사로 바뀌자, 고양이들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숨자는 낯선 나에게 숨은 것이지, 고양이 무리에서는 가장 모험심이 강하고 신중한 고양이임을 관찰하면서 알게 되었다.
숨자는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하여 동료 고양이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그틀이 더 잘 놀도록 쓰레기를 치워주었다.
그리고 고양이들이 야행성인 것을 배우고, 고양이 집에 항상 켜두었던 전등불을 끄고 어둠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어둠은 나에게는 불편함이었지만, 고양이들은 오히려 편하게 자신의 환경에 적응했다. 이제 고양이들의 행동을 따지지 않고 이해하려 하고 있다. 그게 고양이들과 나의 평화선언이다. 꾸짖지 않고 이해하기! 필요한 것을 찾아 채워주기!
3.
이제 나는 내일 아침 첫배를 타고 가파도를 떠난다. 내가 떠나면, 나 다음에 고양이들을 돌봐줄 사람은 보름 후에 올 예정이다. (그 비워있는 보름동안 고양이들을 매표소 직원이 챙겨주기로 했다.) 그다음 사람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미지의 고양이 집사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편지 형식으로 남기기로 했다. (그게 이 마지막 일기를 쓰는 이유다.)
4.
안녕하세요. 새로 오신 고양이 집사님!
저는 집사님 이전에 한 달 동안 고양이들과 생활했던 사람입니다. 고양이는 처음 돌봐서 시행착오도 많이 했고, 내가 잘못한 것을 고양이 잘못이라 생각(착각)해서 화내고, 삐졌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릅니다.
아마도 집사님은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으시겠지요? 있으시다면 다행이고, 없으셔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까다로운 고양이들은 아니니 몇 가지만 잘 챙겨주세요. (제가 했던 초보적인 노하우를 몇 자 적습니다. 아시는 내용이라면 무시하세요.)
우선 고양이들은 깨끗하고 부지런하게 노는 아이들입니다. 그것만 아시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제 때(하루 두 번, 아침과 저녁) 밥(사료)과 깨끗한 물을 갈아주시면 50%는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료는 별채 고리 달린 양철동에 충분히 있습니다.) 나머지 50%는 배변 모래에 싸놓은 똥과 오줌을 아침, 저녁으로 거둬서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려주시면 됩니다.(고양이가 오줌을 누면 배변모래가 뭉쳐집니다. 뭉쳐진 그것을 버리면 됩니다.)
고양이가 한 마리라면 아마 같이 놀아주는 시간을 가져야겠지만, 얘네들은 여섯 마리라 자기들끼리 무척 신나게 노니 굳이 일부러 놀아주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가끔 문을 열어놓으면 갑자기 고양이들이 뛰어들어올 수도 있는데, 그때는 놀라지 마시고 같이 놀아주시든지, 그게 싫으시면 무심하게 할 일을 하시면 고양이들이 둘러보다가 알아서 나갑니다. (억지로 내쫓으려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 새끼 고양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으시다면 새끼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인공물고기가 달린 낚싯대를 사두었으니 적당히 사용하세요.(신발장 맨 위에 두었습니다.) 여기까지가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고요.
이곳에서 얼마나 지내실지는 모르지만, 이곳은 퍽 현대적인 생활용품들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세탁기, 대형 TV, 대형냉장고, 에어컨, 제습기, 청소기, 원두커피기계, 전기밥솥, 레인지, 인덕션까지 다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니까 생활에 필요한 하드웨어는 다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신 음식 재료는 거의 다 떨어졌다고 보셔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안 좋은 점은 가파도에서는 식료품과 일상용품을 파는 마트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러니 필요한 용품은 배 타고 나가셔서 홍마트나 우리들마트 같은 대형마트를 이용하셔야 합니다. 우리들마트는 3만 원 이상 구입하면 1천 원을 더 받고 가파도 선착장까지 배달해 주니 그걸 이용하세요. ) 다이소는 모슬포매일시장 입구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슬포항 옆에서 1.6자가 들어간 날에 대정오일시장이 열리니 야채류의 식료품은 날짜에 맞춰 구입하시면 싸고 좋은 것을 사실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주민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에 들고 이야기가 통하는 주민과 친하게 지내면 더욱 좋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매표소 직원과 친하게 지냈는데, 제가 섬생활에서 불편하거나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시겠지만 이곳은 섬이라 해안가가 아름답고, 마을길도 예뻐서 어느 곳을 가든 산책하기는 그만입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고양이들과 기쁨과 평화를 누리시고, 소망하는 일들이 무사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