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쓰기 1 : 첫 책의 서문

김경윤, <철학사냥 1 >(민맥, 1994)

by 김경윤
1994년 나는 나의 첫 책인 <철학사냥1>을 출간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의 일이다. 30살이 갓 넘었을 나이에 첫 책을 쓰고 참으로 뿌듯했다고 말해야겠다. 서문을 다시 읽으니 치기어리지만 풋풋하다. 이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리라. 이후에 이 책 덕분에 밥벌이도 하고 강의도 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고맙다. 첫 책. 지금은 출판사마저 사라지고 절판된 책!


이제는 절판이 된 책. 뒷 표지에 가격을 보니 5천원이다. 인터넷 중고상품이 있나봤더니 있다. 중고가가 1,500원(중풍)이다. 아이고, 아직은 유통되고 있구나.

‘서문(序文)’이라는 말에서 서(序)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차례를 나타내고, 다른 하나는 처음 시작을 나타낸다. 이 뜻을 그대로 따르자면 서문은 처음에 글의 차례를 나타내기 위하여 쓰여지는 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쓴이는 목차는 처음에 잡되 서문을 나중에 쓴다(고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뜻을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새긴다. 서문은 글을 마치는 사람이 ‘당신은 글을 마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것이다’라는 정신을 확인하기 위하여 쓰는 것이다.

나는 청년이다. 청년이라는 조건은 책을 쓰는 사람에게는 장점도 되지만 단점도 된다. 청년의 글발은 맥주나 소주처럼 금새 다가갈 수 있고 쉽고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오래 담궈놓은 술처럼 깊은 맛을 우려내기는 힘들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이 고급레스토랑에서 몇백년 묵은 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 손에 있기 보다는, 호주머니에 얼마 없어 대학가의 주점이나 포장마차를 찾아가는 청년학생이나 하루의 피곤한 일가를 마치고 피로를 풀기 위하여 삼삼오오 생맥주 집으로 찾아가는 박봉의 노동자들의 손에 쥐어지길 바란다. 술집이야말로 젊은이들의 해방구 아닌가?우리의 모든 논쟁이, 절망과 희망이, 기쁨과 반성이 모두 여기에서 나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에 이 책이 있었으면.


표지에 소개된 저자의 이력과 사진. 참 젊고 날씬했구나.

이 책은 두 권으로 기획된 철학책 중에 첫번째 책이고,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여러가지 질문을 통하여, 또는 다른 학문과의 비교를 통하여 철학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1부를 설정한 이유는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막상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해본 나의 경험 때문이다. 많은 철학개설서들이 철학에 대한 이러저러한 사실을 전달하고는 있지만 정작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책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과부마음 홀아비가 안다’고 독자의 입장에서 철학책을 읽고 답답했던 마음을 1부 속에서 풀어보려고 하였다.

2부는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철학적 흐름을 살펴보고 있다. 적은 지면에 고대, 중세 그리고 근대 철학까지를 다루다보니 많은 부분 압축적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철학자들과 핵심적인 내용들은 되도록이면 다루려고 최선을 다했다. 한편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그 시대의 특징적 사건이나 배경을 소개함으로써 철학의 밑바탕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했다.

1부나 2부나 철학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표와 그림을 많이 수록하였다. 철학을 공부하다보면 산만한 지식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도식화의 위험성이 있지만 우선은 정리의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철학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화적 예문과 대화기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전문적인 철학서적이라면 이러한 시도가 사족에 불과한 것이지만 처음으로 철학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유효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왜 매번 글쓴이가 책의 서문에 출판사 사장과 직원에게 사죄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지를 나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제 책이라고 한 권 써놓고 보니 민맥출판사의 은은한 독촉과 경탄할만한 인내가 정말 고맙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 한지붕 두가족 성원의 고마움도 함께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책을 쓰는 일은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책이 나오기 까지 부족한 책을 꼼꼼히 검토하고 자상하게 도움말을 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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