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철학수업> (생각의 길, 2018)
첫 책을 쓰고 <철학사냥2>를 집필했으나 출판사가 사라지는 바람에 원고만 남은 채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가 새로운 출판사를 만나 <철학사냥2>를 대폭 바꿔서 출간하게 되었다. 출간된 해가 2018년이니까 20년이 더 지난 원고를 만진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철학은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문제를 발명하는 것. - 알랭 바디우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문제아(問題兒)’다. 사전적 의미로도 그렇고, 철학적 의미로도 그렇다. 밥도 돈도 안 되는 책을 읽고 있으니 그렇고, 스스로 문제를 안고 있으니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문제적 행위이며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은 문제적 상황이다. 문제적 상황에서 문제적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문제아라 부른다.
삶을 문제없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책을 거의 안 읽는다. 그냥 살아가면 된다. 그런데 삶이 삐그덕거릴 때 우리는 그냥 살 수 없게 된다. 일상적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문제가 뭔지 생각하게 된다. 문제가 뭔지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을 우리는 철학자(哲學者)라 부른다.
철학자는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질문하고, 추적한다. 결국 철학자는 일상적으로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문제시(問題視) 한다. 진리니, 국가니, 정의니, 사랑이니, 이성이니, 자유니, 평등이니, 믿음이니, 발전 따위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문제적인 것으로 변모한다. 그리하여 철학자는 새로운 문제를 발명한다.
철학자가 발명하는 것은 문제뿐만이 아니다. 당연한 것을 문제적인 것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개념’ 또한 발명한다. “철학은 개념을 발명”하는 것이라고 들뢰즈와 가타리는 말했다. 철학자가 발명한 ‘개념’들을 안경 삼아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문제투성이로 보인다. 개념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이 달라진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니체의 ‘초인’, 프로이트의 ‘무의식’ 등은 이들이 발명한 문제적 개념들이다. 이 개념으로 세상을 보니 자본가들의 문제가 보이고, 교양인들의 문제가 보이고, 멀쩡한 의식을 가진 이들의 문제가 보인다. 희한한 일이다.
이 책은 20세기 이후의 서양의 철학자(문제아)들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자신이 살던 세상을 정상적으로 보지 않고 문제적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개념’들을 발명하였다. 이 책은 그러한 개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개념들을 될 수 있는 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한편 그러한 개념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들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현실 속에서 발명되었음을 그들의 생애를 소개하면서 연관지어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과 동시대인인 우리는 그들이 발명한 ‘개념’을 통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개념’을 발명함으로 ‘문제’를 발명한 철학자 16명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의심의 대가 3인방인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인간의 의식과 존재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려했던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현대의 변모한 조건 속에서 새롭게 변혁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그람시, 루카치, 프랑크푸르트 학파, 삶의 보편적인 규칙을 발명했던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 그리고 그러한 규칙으로 인류에게 적용한 레비스트로스, 구조주의를 다양하게 변형, 변모시킨 라캉, 알튀세, 푸코, 들뢰즈가 그들이다. 중간중간에 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12명의 철학자를 압축적으로 소개했다. 그중 4명은 여성이다. 삽입한 도표나 그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장치들이다.
자, 문제적 철학자들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문제아인 여러분이 있다. 책의 제목은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철학수업>이다. 잠을 자야할 시간에 잠 못드는 것도 문제다. 책이 재밌어서 잠 못 든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냥 잠이 못 드는 경우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 문제작(問題作)이다. 책을 보다가 졸린다면 다행이다. 이제 잠을 잘 수 있을 테니. 만약에 잠 못 든다면, 괜찮다. 책 제목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나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눈이 뜨여진다면 이 책은 목적을 다한 것이다.
2018년 유난히 무더운 불면의 밤에
김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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