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이후 1 : 환송회&환영회

2023. 8.1.

by 김경윤

1.

고양시로 무사히 복귀. 날씨도 좋아, 배편, 항공편 아무 탈 없이 돌아왔다. 꿈같고 다른 삶을 살았던 것 같은 가파도 생활은 일단 끝났다. 가파도의 생활은 끝났지만, 가파도에 살면서 변화된 것이 있다.

일단 마음 가짐. 예전에는 친숙한 것에 스며들어 살기를 좋아했는데, 이제 친숙하지 않은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울생활 35년, 일산 생활 25년, 이렇게 60년의 삶을 살았다면, 이제 어느 곳이든 가서 살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즉, 이제 어느 곳이든 내가 살 수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가보자.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한 어디든 상관없다. (말이 안 통하는 해외는? 이 없으면 잇몸으로!^^) 이런 마음가짐이다.

두 번째로 지금까지 머리를 쓰는 일을 주로 했는데, 몸을 쓸 수 있는 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요리가 되었든, 기술이 되었든,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배워야겠다. 만두를 좋아하니 만두를 만드는 걸 배워볼까, 자전거나 오토바이 정비하는 일을 배워서 그걸 직업으로 삼아볼까. 뭔가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해야겠다. 나이 60에, 힘 다 빠진 몸으로 결심하기에는 늦은 감도 있지만, 앞으로 얼마를 살든 이 몸 하나 믿고 살아야 하니 늦은 게 늦은 게 아닐 수도 있다.

세 번째로 소중한 사람들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 그동안 내가 잘 살았다면, 내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내 집사 역할(?)을 하며 살았다는 뒤늦은 새삼스런 깨달음이 절절한 요즘이다. 나도 그들에게 집사 역할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2.

가파도에서 떠나기 전날 매표소 직원 식구들이 나를 가파도 밖 모슬포항 쪽으로 초대하여 점심식사도 대접하고, 맛있는 감저(고구마의 제주방언) 시그니처 차도 사주었다. 내가 음식을 요리하여 대접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 고마움을 이렇게라도 표시하고 싶었나 보다. 직원 부부와 아이들 교육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제주도 명소인 감저 공장, 카페, 갤러리를 구경하는 일석삼조의 시간이었다.

해방이후부터 운영되었지만 지금은 가동을 멈춘 제주도 최대의 고구마 전분생산공장. 밀려들어오는 중국상품과 경쟁할 수 없어 접었단다.
감저 시그니처 차. 고구마로 만든 차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작가. 제주도의 청정 바닷속을 촬영하여 전시했다.

나는 식사 대접을 받았으니 저녁에는 김밥을 만들어 대접하겠다고 고양이집으로 초대하여, 냉장고의 남은 재료로 김밥 속을 준비하고 같이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아이들을 위해 어묵만둣국도 만들어 먹였는데, 아이들은 뚝딱 한 그릇씩 먹더니 놀겠다고 나가버렸다. 결국 직원부부와 나만 남아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 꼴. (부부들은 아이들에게 한 마디를 해주기를 원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직원 부부와 식사를 마친 후, 냉장고를 탈탈 털어 부부에게 싸줬다. 이제 구입한 모든 식재료는 하나도 남지 않은 셈. , 떠나는 날 아침에 먹으려고 김밥 한 줄을 남겨놓고, 남은 김밥은 부부에게 싸서 보냈다. 일종의 환송회를 치른 셈이다.


3.

고양시로 돌아온 31일은 내가 운영하는 인문학 놀이터 <참새방앗간>의 정기모임인 참새쇼가 있는 날이었다. 나 대신 나경호에게 맡겼더니 근사하게 준비해 재미난 모임을 가졌다. (나는 그저 숟가락만 얹은 셈.) 오랜만에 만난 참새들과 밤늦게까지 맥주집에서 2차를 했다.

4.

나 없이도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세상. 나만 욕심을 내려놓고 잘 살면 된다.

8월 1일 한 달 동안 못 가본 자유농장에 갔다. 일하면 안 되는 살인 같은 폭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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