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55 : 기도

2023. 8.20.

by 김경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이문재, <오래된 기도>



동녘교회 수련회 마지막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정리 후 예배를 드린다. 예배시간 프로그램 중 하나로 수련회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당일 대표기도를 드렸던 젊은 신도가 기도문 내용에 아이들과 함께 놀러갔던 박물관에 쓰여있는 감동적인 문구를 인용했는데, 진화론에 기초한 내용이어서 교회기도문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아닌가 고민하다가, 동녘을 믿고 진실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는데, 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발표했다. 암, 잘했고말고. 나도 그 기도문을 들으며 참으로 감동하여 속으로 아멘을 수없이 읊조렸다.

동녘교회의 신앙은 워낙 품이 넓어 이쪽 맨 끝에서 저쪽 맨 끝까지 진심을 담은 마음이라면 경청하고 공감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우주 만물 속에, 인간의 역사 속에 신이 깃들어 있다면 하나의 종교만이 옳다는 편견과 아집은 버려야 할 것이다. 다름을 긍정하고 응원하는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길 다들 바란다. 예배 끝에 목사님이 낭송한 시도, 어쩌면 동녘신앙의 한 모습이지 않을까 하여 인용해 둔다. 다들 수고하셨고, 정말 즐거웠고, 푹 잘 쉬었다. 양양의 바다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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