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뷰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이 책의 중심인물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퍼드 대학의 첫 총장이자 어류 분류학의 권위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이면을 바라보면 복잡한 인간상을 발견합니다. 목적의식이 분명한 집념의 학자였지만,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남을 희생한 데다가 우생학을 추종한 점에서 현대인의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지식은 하나도 모르고 순전히 제목 때문에 책을 샀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니.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거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정말로 어류가 없다는 얘기인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과학적 사실에 따르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류라는 범주는 생김새가 유사하기 때문에 벌어진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과학적인 사실이 정정된다 하더라고, 실생활에서 쉽게 믿기 어려워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아니면 어떤 종류의 물고기는 생각보다 인간과 진화적으로 너무 가깝다는 것이 불쾌한 사실일까요?
Vegan은 못하지만 Pescatarian이라고 자부심을 가지며 선언하는 이들에게는 더욱더 충격적인 소식일 겁니다.
A phylogenetic tree of vertebrates
(https://www.ucl.ac.uk/museums-static/obl4he/vertebratediversity/)
작가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인생의 고비를 넘기기 위해 이 위대한 학자를 연구하려 했습니다. 파괴되지 않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던 것 같은 학자의 집념과 성과를 쫓아가다 보면 혼돈이 지배하는 자신의 삶에 답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입니다.
데이비드는 꽃들을 수집하는 충동에 휩쓸렸던 관찰력이 뛰어났던 소년에서,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수집하는 학자로 성장해 나갑니다. 세상의 모든 어류를 분류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낙천성의 방패"를 가지고 끈질긴 투지 끝에 업적을 인정받고, 그 결과 많은 물고기는 그의 이름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이론을 진리라고 믿으며 우생학을 신봉하고, 그것을 널리 퍼뜨려 세상의 "오류적 인간"들을 멸종시키는데 주력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틀러가 성경처럼 모셨다는 우생학책이 원래 1916년 미국인이 출간한 책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이론은 놀랍게도 당시 미국 엘리트층에게 꽤 오랫동안 널리 지지받았습니다.
1927년 즈음 미국의 대법관들은 국민이 무능력의 늪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제 불임화를 법률로 제정하게 됩니다. 부적합하다고 여겨진 사람들은 "성적으로 문란한 젊은 여자들, 이민자의 자손들, 그리고 성적인 전형에서 벗어난 남녀들"이었습니다.
이 강제불임화는 여전히 법제화되어 있으며, 2000년 대에 들어서까지 여성교도소 같은 일부 장소에서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가치는 충분히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사회의 최고 지성인들이 자신의 확고한 믿음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그 믿음으로 실제 법률까지 제정하는 실행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정확한 자기 인식 vs. 자기기만
저자는 책에서 장밋빛 자기기만이라는 특징을 이야기합니다. 인생을 더 쉽게 살아가는 사람들, 회복탄력성이 빠른 사람들, 인생의 회전목마에서 직업, 친구, 연인을 얻고 황금기를 달리는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정확한 자기 인식을 미덕이라 말하지만, 연구결과 그런 특징의 많은 사람들은 병적인 수준의 우울증에 걸렸다고 합니다. 살아가는 일을 힘들어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종종 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사회적으로 혹은 조직에서 환영하는 성향은 자기기만이 충분한 자들입니다. 하루하루 긍정적 착각으로 끈질긴 집념을 가지고 "진보"라고 부르는 무엇인가를 해내는 사람들 말입니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가 가져 마땅한 미치광이들이 생겨난다
적당한 자기기만은 그렇다고 하지만, 지나친 자기기만 혹은 긍정적 착각은 새로운 혼돈을 만들어냅니다. 자신들이 아는 지식이 진리라고 믿을 때 더욱 그러합니다.
의심 많은 사람보다 한 치의 의심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훨씬 더 큰 사회적인 폐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특히 사회를 이끄는 자리에 있는 종교지도자, 정치인, 기업가, 예술가 등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 중에 말입니다.
정의는 이루어졌는가?
어류란 범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존재하지 않는 범주를 평생 쫓아다닌 셈이죠.
하지만 이 책의 발간 이후 상당한 논란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등에서는 건물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졌고, 학술기관과 언론에서 우생학 주장을 중심으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는 “The Problematic Legacy of David Starr Jordan”라는 보고서도 발간했습니다.
어느 정도 정의는 구현된 거겠죠.
혼돈의 마무리
저자는 리서치를 마치고 나서 이 학자와 그의 업적이 자신에게 주는 답은 없다는 것으로 결론 내립니다.
이 책은 평소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많은 부분에서 생각할 지점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 교육, 사회, 기술발전 등과 같은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길러야 할 소양과 가치를 제시하지만 그것들도 영원한 진리는 아니라는 점 말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 소수에 의해 정의되는 AI 기술 속에서 우리의 머리는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답은 없고 의심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