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나의 불완전한 이해에 대하여
나에게 이스라엘은 어려운 나라다.
어렸을 적 해외에 처음 나갔을 때는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의아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탈무드 등 유대인의 교육관을 배우자는 의견이 대세였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그렇게나 세계적으로 유대인 비하 농담이 많은 줄 몰랐다. 도서관에서 정보를 찾아보려 해도 몇 권의 책에서 포괄적인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다. 지금처럼 검색이 쉽지 않았으니까.
조금 머리가 크고 역사를 배우고 나서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할 때, 한 친구와 이스라엘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당시 이스라엘의 건국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고 원칙적인 순진한 주장을 할 때였고, 그 친구가 멕시코계 유대인인 건 더더욱 몰랐다. 사실 멕시코에 유대인이 있는 지도 몰랐다.
글로벌 탑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그렇게나 지성적인 친구가 "유대인은 하나님의 민족으로써 당연히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대답도 신기했다.
국제정세에 대해 여전히 아는 게 별로 없는 와중에, 유럽으로 직장을 찾아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거기서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 섞인 농담을 더 많이 접하게 되었다. 참으로 복잡한 모양새다.
지금 현재에도 과거 유대인과 같이 지역적 차별 혹은 점령 때문에 강제로 나라를 잃었지만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자치권을 되찾으려 하는 민족이 있다. 쿠르드, 티베트인, 아르메니아인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타인 역시 그런 민족 중에 하나다.
이들 민족과 유대인의 차이점은 재력과 영향력일 것인데, 유대인이 그 영향력을 얻게 된 역사 역시 아이러니하다.
유럽 기독교 사회는 유대인에게 토지 소유를 금지했고 그 결과 농업, 공무원 등의로의 진입이 불가능했다. 대신 기독교도는 금전대차를 금지했기 때문에 유대인이 이 틈을 잡고 금융업과 상업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중세시대부터 유대인은 금융, 환전, 보석상 등에 특화되기 시작했다.
여러 나라에 퍼진 유대인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전문성을 한 층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 19세기 들어 은행, 무역, 금융업 등에서 자본가 계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결국 차별로 인해 오히려 특화된 사업에 주력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오랜 박해를 지나 드디어 자신들의 나라를 건국하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민족을 탄압하게 된 이 아이러니.
언젠가 지금 저 민족들도 차별로 인한 어떤 틈새 사이에서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몇 해 전, 회사 행사 때문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느낀 이스라엘은 내가 다녀 본 나라 중 외국인에게 최고로 불친절한 나라였다.(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당시 동료들 중 누군가는 오만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피해의식이라 분석했는데, 굳이 예약을 받은 관광객들에게 인상을 쓰며 음식을 서빙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예루살렘의 가이드는 한 번도 웃지 않았고, 텔 아비브 클럽의 어떤 종업원은 우리를 인상 깊게 노려보았다.
출국할 때는 체크인 대기선에 선글라스를 끼고 기다린다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공항 보안위원 때문에 한참 소동이 일어났고, 출국 다음 날부터는 감기 증세로 한 달은 앓아누워 병가를 해야만 했다.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이 나라는 최근 계속 화두가 되며 글로벌 기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고 있는 모양새다. 오늘 자 신문에 게재된 이스라엘과 이란의 공습과 반격으로 인한 각 국의 사망자 수를 보았다. 이스라엘 최소 24명, 이란 최소 225명이다. 미국은 테헤란 사람들에게 도시를 떠나라고 한다.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
나에게는 최고로 불친절했던 나라.
그러나 부러운 만큼 똑똑한 사람도 많은 나라.
똑같은 굴레가 반복되는 나라.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사실이겠지만 내 마음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