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블룸의 [사랑을 담아]
오랫동안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던 책을 꺼내봤습니다.
평소 존엄사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제목 때문에 내용이 그저 러브스토리에 불과하다는 인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장르를 불문하고 남녀의 러브스토리 같은 글에는 그리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아니면 고의적으로 회피했던 걸까요?)
어렵게 첫 장을 넘겼지만 생각보다 술술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겠다는 판단을 지지하면서, 그에 반하는 모든 제도적인 관문을 통과하는 작가의 경험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필요한 지침서처럼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꽤 많은 후세대 사람들이 거쳐야 할 것 같습니다.
비록 기억력이 점차 퇴화하고 있지만, 가끔 멀쩡하고 아직 건장해 보이는 남편의 삶의 마감에 대한 결단.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존중하며 절차적 승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요?
한국의 장례문화를 고려하면, 국내에서 실제 이런 사례들이 많아질수록 정서적인 충돌이 예상됩니다. 울음소리 높이며 상을 치르는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침착하고 이성적이며 조용한 것 같아 보이는 죽음입니다.
언젠가 코스타리카 힐링여행에서 만난 로컬 샤먼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얘기하다가 진정한 동반자는 죽음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그 의미를 알기 어려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 사랑의 또 다른 면에 대해서 다시 한번 배운 것 같습니다.
감정보다, 상대의 결정권을 끝까지 지지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비록 그것이 이 나에겐 고통일지라도요.
점점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남편을 도와 차분히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절차를 함께하며, 추모식에 장례식 등 모든 후속 행사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내적갈등에 대해, 작가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꽤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그 담백함이 오히려 더 깊게 와닿았습니다.
존엄사는 갈수록 사회적인 화두입니다. 저 역시 치매나 치명적인 장애로 인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면 반드시 존엄사를 선택해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번 돈 다 쓰더라도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표는 남겨놔야지'라고 막연하게 마음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개인의 자유가 우선시 되는 미국에서도 아직까지 이러한 결심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존엄사를 도와주는 단체가 있기는 있지만, 최종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결정과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점이었습니다.
자신의 의지뿐만이 아니라 그 길을 전적으로 지원해 줄 파트너가 없다면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기억이 흐릿해진 상황에서, 치매로 인한 퇴화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의사표현에 분별력이 확실히 있다는 의사의 공식적인 소견서가 필요하자만, 과정을 선뜻 도와주는 전문가를 만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제도적인 조건을 맞추지 못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누구든지 이를 도와주는 사람은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이 혼자서 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곡기를 끊는 선택을 하는데, 덩치가 큰 남자의 경우 생의 끝에 이르기까지 약 3-4주가 걸린다고 합니다.
잠시 책을 멈추고 스스로 식사를 포기하고 마지막 순간으로 향하기 위해 그렇게 확고한 자세로 4주를 보내는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합니다.
존엄사는 매우 보편적으로 깔려있는 상식적인 가치와도 충돌합니다. 삶 자체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뭐든지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죄악시 여기는 비판적인 시각 말입니다. 저자도 종교계와의 갈등에 대해 언급합니다.
우린 오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이다.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구성원들의 유난스럽지 않은 반응과 아들의 선택을 존경스러울 정도로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시어머니. 자녀들의 전폭적인 지지. 모든 게 매우 평화롭습니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 것일까요? 한국인이었다면 상속문제부터 언급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유머와 여백이 느껴져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제 안의 시니컬한 면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백세 시대에서 존엄사를 한 번쯤 생각해 본 저에게는 훌륭한 안내서입니다. 저도 인격적인 마지막을 위해 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야 될 것 같습니다.